사케 도쿠리

속을 알 수 없다면 몰라도 된다.

by gloomee

즐겨 가던 일식집이 있었다. 즐겨 놀던 친구가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그 일식집에 갔는데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따끈한 온사케 도쿠리가 서빙됐다. 분명 웨이터가 테이블을 헷갈린 탓이었을 거다. 그 친구도 나도 처음 접하는 주종에 호기심이 돋아 굳이 웨이터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서로에게 한 잔씩 따라줬던 사케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이름도, 도수도 모르는 술을 우리는 안주도 없이 꼴깍꼴깍 들이켰다. 입 안을 타고 들어온 첫 사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사케를 좋아하게 되어버렸음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이름 모를 온사케 도쿠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동안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셨던 투박한 소주나 보드카와는 달랐다. 달큰하면서도 쌉싸름한 액체가 식도를 부드럽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생소하면서도 반가웠다. 차갑게 취하는 방법밖에 모르던 내가 겪은 첫 온기 있는 음주였다. 그해 겨울은 줄창 온사케를 찾아다녔다. 차가운 사케만을 서빙하는 곳에서는 사케를 데워달라 애원하기도 하고 직접 여러 종류의 사케를 사서 데워 마시기도 했다.


온사케는 혼자 마셔도 외롭지 않았다. 십 년에 가까운 타지 생활을 한 나는 타인의 온기에 대한 의존성이 높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온전히 채워 줄 수가 없었고 이를 실감할 때마다 술을 찾았다. 술에 취하면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하다가, 사무치는 감정들에 휩쓸려 흐느끼는 일을 반복했다. 내가 알던 모든 술은 나처럼 춥고 외로웠으며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서 얼어있는 손과 입김을 내뱉는 입을 달래주는 온사케가 유난히 반가웠다. 정체불명의 뜨거운 액체를 담은 도쿠리를 천천히 비워낼 때면 누군가와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가운 사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누구와 함께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따뜻한 사케 도쿠리를 주문하려 했었다. 데워 마실 수 있는 종류의 사케는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웨이터의 말에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다 결국 차가운 사케 도쿠리를 시켰다. 처음 만나는 차가운 사케 도쿠리는 좀 더 쓰고, 좀 더 거칠었다. 알코올 특유의 쓴맛이 입안에 남아서 자꾸 안주에 손이 갔다. 술의 잔향과 안주가 썩 어울린다고 느낄 때쯤 언제 또 시켰는지 모를 도쿠리 한 병이 더 나왔다. 그렇게 밤새 차가운 사케 도쿠리 8병을 비워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위장까지 내려가지 못한 차가운 사케가 자꾸 눈으로 흘러나왔다.


그 후부터는 기분에 따라 다른 온도의 사케 도쿠리를 사 마셨다.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지거나 혼자라는 느낌을 떨치고 싶을 땐 온사케 도쿠리를 시켰고, 의미 없는 우울이 찾아오거나 혼자라도 괜찮다는 세뇌가 필요할 땐 차가운 도쿠리를 시켰다. 곳곳마다 다른 종류의 하우스 사케를 내주었겠지만 나는 그저 도쿠리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그 당시 내가 어울리던 무리는 내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훌륭히 숙성되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편리한 관계였다. 내가 얼마나 비었는지, 어떤 온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도 그 누구도 캐묻지 않았다. 그때의 나와 같이 속을 내비치지 않는 도쿠리에게 짙은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처음 사케를 맛본 날부터 꼬박 8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자주 사케 도쿠리를 주문한다. 따뜻해도 좋고, 차가워도 좋다. 그냥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도자기 병에 담겨 나오는 사케라면 종류는 상관없다. 거창한 이름이 붙어서 팔리는 사케 대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케 도쿠리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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