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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2. 똥 누는 건 용기가 필요해

-마법사 똥맨

   

아이돌만 화장실을 안 가는 것이 아니다. 수줍음 많고 자의식 강한 여학생들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가더라도 소변만 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빨리 그곳을 벗어난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힘을 주며 더러운 똥을 싸는 일 같은 걸 모두가 보는 학교에서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절대 친구들에게 휴지 같은 것을 빌릴 순 없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면서 아이들의 눈치를 보게 된 건 아마도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서 오래 있으면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것 같았다. 학교는 제2의 집이나 마찬가지라 교실에서 책도 보고 도시락도 먹지만 화장실만큼은 집처럼 편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 혹시 표가 날까 조바심이 났다. 


“야! 너 화장실 갔다가 손 씻었어?”

“윽! 어디서 구린내 난다!”

일부러 큰소리치며 창피를 주는 짓궂은 아이들이 꼭 있었다. 손을 씻었어도 무언가 남아 있는 것 같았고 혹시 냄새가 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화장실에 간다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더구나 대변을 보는 것은 소변과 다르다. 대변은 소변에 비해 품이 더 드는 노동이고 뒤처리도 간단치 않다. 원래 변을 보는 행위는 미묘한 심리의 영향을 받아 낯선 환경이나 기분에 좌우된다. 문 앞에서 지나다니는 소리, 누군가 문을 두드릴까 초조한 기분. 그 속에서 편하게 볼일이 봐질 리 없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대변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랫배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똥맨의 어깨를 짚었다. 

“왜 그래?”

“똥. 진짜, 진짜 못 참겠어. 나 어떡해?”

똥맨이 내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둘렀다. 

“똥?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자, 따라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똥맨을 따라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갔다. 가는 길에 똥맨이 날 웃겼다.

“세상에 똥 안 싸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선생님도 똥을 싸고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황다예도 똥을 싸. 그러니까 눈치 볼 것 없어. 뿌지직 소리가 나거나 말거나 속 시원하게 팍 싸 버리란 말이야.”     

(마법사 똥맨, P93~94, 창비)     


동수는 학교에서 설사를 하다가 친구들의 놀림을 받은 기억 때문에 학교에서 똥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소변기 앞에 서 있던 아이들은 누가 대변칸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와 난리를 쳤다.  

안 그래도 큰일을 보려면 마음이 편하고 안정돼야 하는데 동수는 학교 화장실에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짝꿍 고귀남은 동수와는 전혀 딴판인 아이다. 지독한 장난꾸러기로 지각을 밥 먹듯 하고 공부시간에는 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나 말로 수업을 방해한다. 선생님한테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말대꾸 대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귀남이는 수업 중에 똥 싸러 간다며 당당하게 화장실에 가고 시원스레 볼일을 본 후 휘파람까지 부는 배짱 두둑한 친구다. 그 바람에 ‘똥맨’ 별명까지 붙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집 밖에서 화장실을 가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나면 30분 안에 꼭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변이 나오고 밥을 먹으면 한 시간 후에 또 배에서 신호가 온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으레 긴장하게 된다.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대형 마트 화장실을 찾았다.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는데 기름기 있는 음식은 꼭 말썽이었다. 아랫배가 싸르르하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집으로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설사를 하는지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한참이나 부스럭대며 시간을 보낸 후 여성은 겨우 밖으로 나왔다. 


민망한 마음에 딴청을 하는데 황급히 빠져나가는 여자의 등에 ‘ㅇㅇ 노조’라는 굵은 글씨가 보였다. 언젠가부터 그런 생활인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구청에서, 도서관에서, 방송국에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여성들이 몸 사리지 않고 현장에서 뛰고 있었다.

하루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 보내는 이들은 화장실이 고충이다. 때로 설사를, 때로 변비를 앓는 고통을 집이 아닌 공공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옛날보다 여자 화장실이 늘어난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 집 밖에서는 대변도 못 보던 수줍은 소녀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전투적으로 볼일을 처리하고 빨리 업무로 복귀하는 적극적인 여성이 되었다. 나는 말없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변기 위에 앉았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텁텁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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