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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3. 변비는 인생의 적

-뚱뚱 학교 황금똥 누는 날

언젠가부터 부러운 존재가 생겼다. 밤에 잘 때 누워서 휴대폰으로 먹방 동영상을 시청하게 되면서였다. 식당에 들어가 거침없이 전 메뉴를 주문하고 짜장면 10그릇과 햄버거 20개도 거뜬히 먹어 치우는 유투버였다. 

모로 누운 채로 한식, 중식, 분식, 패스트푸드 가릴 것 없이 그녀 앞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며 꼴깍 침을 삼켰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많은지 먹방 영상들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저 매일 먹고 또 먹는 것으로 업을 삼는 푸드 파이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과연 영상 아래 댓글들도 모두 그녀를 부러워하는 감탄사뿐이었다. 남들보다 열 배, 스무 배 먹고도 탈 나지 않는 건강한 위, 아무거나 잘 먹는 왕성한 식욕과 식성.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진짜 부러워하는 것은 그 때깔 좋은 음식들이 아니라 그런 음식을 거침없이 주문하고 계산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있다가 불현듯 정신이 들면 창밖이 컴컴했다. 눈앞의 화면은 여전히 텅 빈 채로, 도대체 오늘 난 뭘 했나 절망이 밀려들곤 했다. 갑자기 뭔가 폭발할 것 같은 기분에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동네 슈퍼나 편의점.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매대의 과자 봉지를 잡히는 대로 집어다 계산대에 올렸다. 가게 주인은 뭔가 잔뜩 성이 난 내 모습에 눈을 둥그렇게 뜰 뿐이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집안 문제가 발목을 잡거나, 나이를 먹어선지 글은 안 풀리고 산다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에도 갑자기 식욕이 폭발했다. 세끼 밥은 물론이고 집안의 찬장, 냉장고, 뭐든지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입으로 가져갔다. 텅 빈 구덩이를 채우듯 꾸역꾸역 먹었고 배가 터질 것 같은 느낌만으로도 그 순간 모든 문제들이 어디론가 날아간 것 같았다.


그런 생활을 며칠 이어가다 보면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 변을 보지 못하는 날이 하루, 이틀 계속 늘어갔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고 뭔가 속이 꽉 찬 듯 거북해졌다. 밥을 계속 먹어도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고 배출이 안 되니 점점 안절부절못했다. 억지로 변을 눠보려고 애를 쓰다 오히려 탈이 났다.

결국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항문외과’ 병원에 걸음을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수치스럽게도 옆으로 누워 의사가 보여주는, 내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신체 부위를 스크린 속에서 확대까지 해서 목격하고 말았다. 의사는 나에게 하룻밤 입원을 하는 수술을 권했지만, 나는 마치 탈출하듯 병원을 도망 나왔다.


배를 채우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아무리 배가 부르다고 해도 잠시의 포만감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뇌는 더 많은 만족감과 행복감을 요구했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음식을 넣어줘야 했다. 나는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잠시 달래려고 했을 뿐이었다.          

“비법? 비법이라…….”

강우는 이제껏 똥 잘 싸는 법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말 그런 비법이 있을까. 강우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똥 싸는 비법…… 똥 잘 싸는 법이라…….’      

(뚱뚱 학교 황금똥 누는 날, p75, 개암나무,)     


뚱뚱 학교에서는 몸에 좋거나 말거나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다. 수업 시간 사이에는 토스트, 햄버거, 피자, 치킨에 콜라를 곁들여 간식을 먹고 점심시간에는 영양사 선생님이 탕수육과 돈가스를 무제한 제공해 준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교실 문에 몸이 끼고, 의자를 박살 낼 정도로 뚱뚱해진다.  

이런 학교에 평범한 체격과 입맛을 가진 강우가 전학을 온다. 강우의 아빠는 태권도 사범님이라 강우는 운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달리기에서 꼴찌로 들어와야 1등이고 배치기로 반장을 뽑는 이 학교에서 강우는 비웃음을 살뿐이다. 


반장은 전국 어린이 햄버거 먹기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려고 햄버거를 먹다가 급체를 하고 강우는 그런 반장을 도와준다. 하지만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반장을 보고 반장이 똥을 누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장뿐 아니라 반 전체가 모두 먹기만 하고 변을 보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매일 과자와 패스트푸드를 실컷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 같은 아이들은 화장실에서는 모두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생에는 수많은 지혜가 필요하지만 그중 ‘똥 잘 싸는 법’도 한 구석을 차지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변비 낫는 법’으로 수많은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거나, 특정한 것만 먹거나, 혹은 너무 먹지 않거나 특정한 것을 가리는 태도 모두 인생을 상대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혹은 먹는 것밖에는 낙이 없어서, 먹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순전히 배가 고파서만 먹지 않는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간 것은 결국 밑으로 나와야 하는 법. 먹을 때는 아무리 맛있고 배부른 것도 내 속에서 잘 소화되어 배출되지 않으면 독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생을 짧게 요약하면 먹고 소화하고 싸는 것의 반복이니까. 그 흐름이 깨지면 생활이 무너지니까.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느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무조건 집을 나와 걷기로 했다. 심장이 쿵쿵 뛰고 땀이 배어 나올 때까지 한마디로 갈 데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매일 보는 똑같은 동네 길거리 모습이 조금 결이 다르게 보일 때가 생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 시선에 따라 주위 환경도 다른 색을 띠게 된다. 그렇게 조금은 맑아진 머리와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는다. 무언가에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나 자신을 직시하는 것을 배운다. 결국 똥을 잘 싸는 방법은 인생을 건강한 태도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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