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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4. 벽에 똥칠하며 살긴 싫다

- 똥 싼 할머니

엄마는 고모들과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는데 한 가지만큼은 인정받은 것이 있었다. 중풍으로 누워 계시던 할머니의 병 수발을 들면서 매일 대변을 받아낸 것이었다. 똥 기저귀를 치우는 것은 물론 맨손으로 꽉 막힌 항문을 파내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친딸들조차 꺼리는 일을 서슴없이 해낸 건 엄마가 억척스럽거나 인정이 넘치는 성격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며느리로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피할 수 없어 담담히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싶다. 막다른 곳에 이르면 사람에게 본연의 인간애가 튀어나오는데 평소 다정다감했던 시어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지막 도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된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게 되자 우리 집은 또 한바탕 소용돌이가 쳤다. 안 그래도 비좁은 집에 남동생은 제 방을 빼앗겼고 막 6학년이 된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할 할아버지의 존재가 불편하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완전 옛날 사람인 데다 고혈압으로 한번 쓰러지신 경험이 있어 껄끄러웠다.


어느 날, 엄마가 마당의 변소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보니 쭈그리고 앉는 변기 주변이 온통 똥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었지만 뜻밖의 변명에 엄마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글쎄 동네 똥개가 그랬다. 내가 봤다.”

그 후로도 변소 안은 자주 할아버지의 똥세례로 엉망이 됐고 엄마는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했다. 똥 그 자체보다 할아버지의 해괴한 말씀에 더 기겁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천천히 치매를 앓고 계셨던 거였다. 치매 증상의 한 가지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할머니가 똥을 쌌다. 

싼 똥을 밤톨만큼씩 양말에 묶어 재봉틀 밑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오늘 아침은 웬일인지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못살아, 못살아. 어떻게 양말에 똥 싸 넣을 생각을 하신 거야?”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고 우는 시늉을 했다.

“허허, 우리 어머니 큰일을 하셨구먼…….”

아빠가 허허허 웃었다.      

(똥 싼 할머니, p11, 시공주니어.)      


새샘이네는 어느 날 강원도에 사시던 할머니를 모셔 와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된다. 촌사람인 할머니는 옛날 생활 습관을 고집하며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심한 잔소리로 식구들을 짜증 나게 하고 이웃들과도 갈등을 빚는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고 물건을 자주 잊어버리자 가족들은 할머니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바쁜 아빠 엄마 대신 손주들을 돌봐주던 다정한 할머니, 손주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 들여 장만해 주고 손주들의 장난감도 소중히 간직해 주던 할머니였다. 어쩌다 아빠 엄마가 야단을 치려고 하면 치마폭에 감싸 숨겨주던 사랑이 넘치던 할머니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만날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는 치매 노인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TV 드라마 보는 것이 큰 낙이었던 시대에 가정 드라마는 대부분 대가족이 배경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꼭 등장했는데 재미있는 점은 아파서 누워 있는 설정이었다는 거다. 아마도 효자 효부를 강조하던 시대에 노인 공경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장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노인 수명이 훨씬 길어져 내 부모님도 어느덧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전 연세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주변에 나이 든 어른들이 많아지면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이 있다. 누가 치매에 걸렸다거나,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옛말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라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의 부작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이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기저귀를 차지만 좀 크면 대소변을 가리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나이 들어 중병에 걸리면 다시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존재로 전락한다. 한번 병원에 입원했다가 생전 처음으로 기저귀를 차고 보름 동안 생활한 엄마는 그 시간을 떠올리면 머리를 젓는다.


간병인이라는 아주머니들은 엄마를 갓난아기처럼 다뤘다. 대변을 보고 나면 아무리 싫어도 간병인이 바지를 내리고 똥 기저귀를 휙휙 벗겨 처리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그 순간에 환자는 그저 무능력할 뿐이다. 

제 발로 화장실에 못 가는 신세란 그렇게 비참하다. 하지만 누구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제 발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예전과 달리 건강 관리가 아무리 잘 이뤄져도 누구나 죽을 때가 되면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우리의 가장 은밀한 배변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면 그냥 저세상 가야지.”


엄마는 아직도 당신의 아랫도리를 남에게 맡겨본 경험이 악몽 같다고 하신다. 하물며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방에 똥칠을 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상상조차 두렵다,

저마다 오래 살아서 좋다고, 복이라고 하는 시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고 폐를 끼치지 않게 살다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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