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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5. 가족끼린 뿡뿡뿡

- 방귀쟁이 며느리

아침에 눈을 뜨면 몸도 활동을 개시한다. 아랫배가 빵빵하고 뒤가 당기면 방귀가 나올 징조다. 눈치 볼일 없이 힘을 주어 뿡! 방귀를 뀌어 버린다. 누운 채로 이불속에서 혼자 방귀를 붕붕 뀌기도 한다. 혼자 사는 장점이라면 이렇게 은밀한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일지 모른다.


오래전 친구가 결혼을 할 때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천생연분인 동갑내기 남자를 만났다. 평소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자유롭게 살다가 막상 누군가와 살림을 합치려니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 혼자였던 때가 그리울 것 같아.”

“혼자면 뭐가 좋은데?”

“혼자면 방귀도 실컷 뀔 수 있지.”


너무나 솔직한 답변에 실소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의외로 서로를 사랑하는 신혼부부가 맞닥뜨리는 일상의 문제에 이런 것이 있었다. 연애할 때는 예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는데 함께 살면서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어떤 예쁜 여자 연예인은 결혼 초 신랑 앞에서 화장실을 못 가서 매번 친정으로 뛰어갔다던가.      


“너 나한테 부끄러울 일이 뭐 있느냐? 무슨 일이라도 흉 잡지 않을 터이니 마음 놓고 말해 보려무나.”

그제야 며느리가 한다는 말이, 

“그럼 말씀드리지요. 저는 본디 방귀를 많이 뀌는데, 시집온 뒤로는 시집 식구들이 어려워서 마음 놓고 방귀를 못 뀌었습니다. 나오는 방귀를 억지로 참다 보니 그게 병이 된 듯합니다.”     

(방귀쟁이 며느리 〈옛이야기 보따리, p308, 보리)     


옛날 어떤 집이 새 며느리를 봤다. 참하고 예쁜 며느리인데 웬일인지 시집온 후로 어디가 아픈 것처럼 안색이 나빴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며느리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원래 방귀를 많이 뀌는데 시집온 후로 마음대로 방귀를 못 뀌는 바람에 얼굴이 누렇게 뜨고 병이 났다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우습기도 하고 가엽기도 해서 마음껏 방귀를 뀌라고 허락했다. 며느리는 자신의 방귀는 보통 방귀가 아니라고 경고하며 모든 식구들에게 집안 어디든 단단히 붙잡으라고 일렀다.  


마침내 며느리가 방귀를 한 방 펑! 하고 뀌었는데 그만 집안이 대포를 맞은 듯 풍비박산이 났다. 결국 시부모들은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같이 길을 떠났다. 

그러다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만났는데 이번에도 며느리가 방귀 한 방을 쏘니까 감이 쉽게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방귀 잘 뀌는 것도 쓸모가 있는 것이다. 해서 그 모습을 본 시부모는 마음을 고쳐먹고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 잘 살았다.          


아버지에게 별명을 붙인다는 것은 어렸을 때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더구나 그 별칭이 ‘방귀대장 뿡뿡이’ 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귀여운 어감이 있어도 아버지가 방귀를 잘 뀐다는 사실을 꼬집는 셈이니까. 

젊어서부터 술도 많이 드시고 식성도 좋던 아버지는 방귀를 잘 뀌셨다. 그것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주 큰 소리로 거침없이. 청소년기까지 아버지의 방귀 습관이 나는 거슬리고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다른 식구가 밥상에서 기침을 하거나 트림을 하면 밥상 예절을 따지며 지적을 하면서도 당신이 면전에서 방귀를 뀌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기도 하지만 체면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자 아버지가 방귀를 뀌는 것을 더 이상 흉잡지 않게 됐다. 오히려 아버지는 방귀대장 뿡뿡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고 부모님도 나에게 같은 태도를 보인다.   


서로에게 그만큼 관심이 없어지고 무덤덤해진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익숙해지거나 포기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가족이란 서로의 흉허물이 아무렇지 않은 관계일지 모른다. 서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 부끄러울 것도 가릴 것도 없어진 메주처럼 숙성된 사이. 어쩌면 그것이 가족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방귀를 트다’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많이 쓰인다. 심심찮게 남편과 언제부터 방귀를 텄는지, 혹은 시부모님과도 방귀 뀌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지를 논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다. ‘방귀 트는’ 사이가 가족의 친밀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듯하다. 


결혼해서 남편, 시부모처럼 새로운 가족과 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생리작용까지 나누게 된다. 대소변과 달리 나도 모르게 나와 버리는 방귀는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가족 누가 방귀를 뀌어도 신경도 안 쓰일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설사 그것이 대포처럼 우렁차고 독가스처럼 치명적이더라도.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온갖 지저분하고 꺼려지는 행위들을 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인지 모른다. 때로 상대방의 토사물을 닦아주고 나쁜 냄새를 견디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는.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수치스러운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사이가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직 방귀 트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면 진정한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를 의식하고 신경 쓰는 ‘남’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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