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전, 잠시 책에 집중하려는데 벨이 울린다. 누구시냐는 내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느닷없는 공격이지만 왠지 감동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멈칫거렸다. 매주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인근 교회의 아주머니들이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감동 멘트가 연이어 쏟아졌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쉽사리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다가가기 힘든 세상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이해관계가 되면 서로를 멀리하고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 사랑해서 태어난 피조물이라고, 이 세상은 사랑이 넘치는 조물주의 창조물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세상도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달리 보인다.
“넌 이 세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하지 않니?”
오래전, 나에게 자신의 종교를 권유하던 선배도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작은 물건 하나도 제조업체가 있고 쓰임새가 있어 만들어졌다. 하물며 이 거대한 세상을 만든 이는 누구일까.
세상은 아무 생각 없이 살자면 멀쩡하게 살아지는 곳이지만 이렇게 의문을 품고 덤벼들자면 한없이 미궁에 빠지는 곳이다. 선배의 주장은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누군가 세심한 고려와 원대한 포부로 창조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때는 땅이 밋밋해서 산도 없고 골짜기도 없었거든. 그런데 마고할미가 돌아다니면서 온 산천을 만들었어. … 평평한 데를 다니면서 손으로 죽죽 그으면 그게 산이 되고 골짜
기가 됐지. (중략) 또 흙이 패서 비탈진 곳에다가 마고할미가 오줌을 누면 그 오줌이 흘러내리면서 강이 됐고, 움푹 팬 곳에 물이 고이면 호수가 됐어. 걸어 다닐 때 생긴 발자국은 웅덩이가 됐고, 일하다가 앉아서 쉰 곳은 죄다 평평해져서 너른 들판이 됐지.
(우리 신화로 만나는 처음 세상 이야기, p22-23, 토토북)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확실히 후자가 더 상상의 여지가 풍부하다. 고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이 태어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세계의 다양한 창조 신화는 바로 그 의문을 해소하려고 태어났다.
태곳적 세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신화는 설명해 준다. 아무것도 없던 우주에 누가 세상을 만들었고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대개 창조주들은 거인들이었다. 형태로도 거인들이었고 능력적으로 우주를 손아귀에 주무르는 대인들이었다. 거인들은 진흙 놀이하는 것처럼 세상을 만들었다. 손으로 휘휘 저어 산도 만들고 계곡도 만들고 그러다 그곳에 실례도 했다. 잠시 쉬면서 치마폭을 들어 올리고 시원하게 소변을 봤다. 여신 마고 혹은 설문 할망이 우리 세상을 만든 주인이었다.
여신의 소변은 콸콸 쏟아져 강을 메우고 호수를 채웠다. 오줌은 몸속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간 세상은 신의 몸을 통과해서 나온 물질로 이뤄졌다. 즉 인간 세상 자체가 신의 몸에서 나온 산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조물주는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 많은 생명체와 이 넓은 세상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신이 귀하게 공들여 정성스럽게 설계한 피조물일까. 아니면 신이 어느 날 즉흥적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던진, 장난스럽게 주물럭주물럭 만들어 낸 장난감들일까.
그래서 가끔은 우연히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보며 아득해질 때가 있다. 그 너머에 정말 누군가가 있어 우리를,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 신이 손수 빚어 만들고 창작한 작품, 신이 몸소 자신의 몸에서 배출한 체액으로 채운 세상.
인간이 무조건 만물의 영장이라 우쭐대다가도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동물이라 감탄하다가도 문득 거꾸로 생각해 본다. 우린 그냥 이리저리 휘적휘적 만들어 낸 찰흙 덩어리라고, 세상은 그저 거대한 신들이 장난 삼아 여기저기 집어던지고 파헤치고 손톱으로 죽죽 그어댄 작품이라고.
신을 닮게 창조되었다고 해서 온 세상의 주인이라 자부하고 살았는데. 그러면 왠지 피식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 스르르 목과 어깨에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저 멀리 푸른 하늘 어딘가를 올려다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