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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Oct 22. 2023

1. 똥도 음식이다

–걸리버 여행기

오래전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 설국열차에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나온다. 기차의 꼬리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음식이 알고 보니 바퀴벌레를 원재료로 했다는 거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처럼 차라리 정체를 모르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똥을 소재로 만든 음식을 상상하긴 어렵다. 똥은 음식이 소화되고 나온 찌꺼기이며 그 자체가 온갖 병균의 집합체이다. 우선 고약한 냄새와 물컹한 형체는 보기만 해도 혐오스럽다. 조선 시대에 똥을 발효해 만들었다는 똥술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민간요법이고 요즘에는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미국 소설을 읽고는 똥을 먹는 것이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로 황폐화된 미래에, 넘쳐나는 실업자들이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대 유통기업이 이 소설의 무대다. 

외관상으로는 합리적인 대우와 우수한 복지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특히 직원들이 점심으로 즐겨 먹는 햄버거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특혜가 있다. 바깥에서는 비싼 가격에 줄을 서도 먹기 힘든 귀한 백 퍼센트 쇠고기 햄버거다. 

구하기도 힘든 진짜 쇠고기 백 퍼센트 햄버거를 어떻게 값싸게 만드는 걸까. 그 비밀을 알게 됐을 땐 엄청난 충격과 함께 토악질이 나왔다.           


그 방의 연구자는 학술원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에 몰두해 온 사람이었다. 얼굴과 수염은 누르께했고 손과 옷에는 오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를 소개받은 그 연구자는 나를 꽉 껴안았다.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은 인사였다.) 그가 처음 학술원에 왔을 때부터 해 온 연구는 인간의 대변을 원래의 음식으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대변의 몇 부분을 분리해 쓸개즙 때문에 생긴 색깔을 제거하고 악취를 빼고 타액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걸리버 여행기, p233, 보물창고)     

 

걸리버는 소인국과 거인국에 이어 세 번째 항해에서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를 발견한다. 라퓨타에 싫증을 느낀 걸리버는 지상 영토로 내려와 다른 섬들을 여행하는데 그중 발니바르비 아카데미라는 연구소에 방문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인간의 똥을 음식으로 되돌리려는 연구였다. 똥은 음식이 소화되고 남은 것이므로 몇 가지 처리를 통해 다시 음식으로 복원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이 배출하는 인분은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 매일 쏟아진다. 하수처리장을 통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화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하천을 오염시킨다. 환경보호 차원에서라도 똥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나오는 이유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의 인분은 수거돼 농촌에서 비료로 썼다. 화학비료가 부족해 허용되었던 이 관행은 기생충 문제로 금지되었다가 점점 사라졌다. 똥을 음식으로 재활용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가 많은 현실에서 또 다른 동기가 된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소화되어 똥으로 변했다면 혹시 똥을 다시 음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똥의 성분을 추출해 음식 재료로 활용한다든지 어떤 식으로든 똥에서 음식으로 섭취할 성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똥을 가리키는 한자 ‘분(糞)’은 위에 쌀 미(米) 자와 아래에 다를 이(異)가 합쳐져 생겨났다. 즉 똥은 우리가 먹은 음식인 쌀의 다른 형태라는 뜻이다. 소화되지 않은 영양분이 존재할 수도 있는 데다 변은 어디까지나 공짜이므로 성공만 한다면 무궁무진한 식품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똥이 가축의 먹이나 심지어 약으로도 사용된 것은 바로 똥이 구하기 쉽고 비용이 안 든다는 점에 크게 기인한다.


만약 현대에 인분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고자 한다면 기생충과 병원균을 완벽하게 살균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위생적으로 처리됐더라도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똥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기근이 심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뉴스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결국 누군가 인분을 먹게 된다면 기호가 아니라 경제성이나 궁핍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미래 식량으로 곤충이 떠오르는 현실에서 똥이라고 해서 절대 식량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더라도 결국 특정한 계층만이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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