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 (2020, 은행나무)
1960년대 미국, 엘로우는 14살의 흑인 소년이다. 불우한 환경에도 착실하게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에 갈 꿈을 꾼다. 우연히 범법자가 되어 니클 아카데미라는 감화원으로 가게 된다.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아 불법을 저지른 백인과 흑인 소년들을 구별하여 2여 년 동안 세상과 격리시킨 곳이었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노동착취, 온갖 폭력과 강간, 고통이 가득한 곳이었다. 엘로우는 부당함에 맞서지만 심각한 폭력 앞에 순응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지 고민한다. 결국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엄청난 반전을 포함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천천히 느리게 드러나는 것처럼, 50여 년이 지난 후 니클이 어떤 곳인지 알려지게 된다.
“니클에서 자행되는 만행에 지침이 되는 상위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가설. 상대가 누구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111쪽
니클은 이제 사라졌을까.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는 심각하다. 인종을 떠나 사람과 사람 간에 혐오와 차별도 만연하다. 법과 제도를 바꾸어도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법이 있으니 시위를 하며 팻말을 흔드는 것은 가능했다. 많은 백인들을 설득한다면 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탬파에 있을 때 터너는 좋은 셔츠에 넥타이를 맨 대학생들이 울워스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들은 거기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 시위가 성공해서 식당이 흑인에게도 음식을 팔기 시작했지만 터너는 어차피 돈이 없어서 그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법을 바꿀 수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 니클의 인종차별은 지독했다.(중략) 그러나 터너가 보기에 사악함의 뿌리는 단순히 피부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스펜서였다. 스펜서와 그리프였다. 아이들이 이런 곳에 오게 만든 그 모든 부모들, 사람들이 문제였다.” 137쪽
엘로우가 사는 흑인 동네에 글을 알고 책을 읽는 소년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엘로우만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을 저지하다 몰매를 맞았다. 니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일을 막다가 엄청난 매질을 당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억울함과 고통을 느끼지만 차별과 폭력 앞에 ‘망가진 상태’로 자신을 놓아버린다. 엘로우도 그런 위기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엘로우는 니클의 운영자들의 비리를 꼼꼼히 기록하여 폭로하려고 한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힘과 부당함을 폭로하고 변화를 끌어내려는 노력은 할머니의 보호 속에서 받았던 교육 때문이지 않았을까.
“노예를 다루는 방법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잔혹한 재산을 물려받을 때. 놈을 가족과 떨어뜨려놓고 채찍질을 해라. 놈이 오로지 채찍만 기억하게 될 때까지. 놈을 사슬로 묶어두어라. 오로지 사슬만이 놈의 세상이 되게. 쇠로 된 징벌 상자에 한동안 집어넣어 햇빛에 뇌가 푹푹 익게 만드는 것도 놈의 기를 꺾어버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어둠 속에 둥둥 떠서 시간마저 초월한 느낌을 주는 어두운 감방도 마찬가지였다.(중략) 백인 아들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렸다.” 239쪽
지금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인종간, 지역과 사는 곳에 따른 교육격차도 생각해본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마주하며 오랜 시간이 흘러도 혐오와 차별, 배제가 여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의 니클은 폐쇄되었지만 수많은 니클들의 존재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추천 : 문제의식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분,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관심 많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