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질 봄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곧 사라질 봄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 오늘 수업이 4개여서 제대로 봄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에 함께 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화사하게 빛이 났다. 햇살처럼 나를 감싸주고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힘은 처음 보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결이 다른 삶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싶게 한다. 봄의 계절은 곧 지나가더라도 이 사람들과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리라.(과제수행 완료)
봄의 얼굴은 어떤 모습인가. 봄 하면,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작년 경주 불국사에서 가족들과 벚꽃 향연에 흠뻑 취해 수많은 사진을 찍었더랬다. 오랜만에 남편과 어깨동무를 한, 다정한 샷도 건져냈다. 인스타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는 지인들이 보기 좋다며 요즘 사이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 당시 남편에게 서운했던 일을 하도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날 봄사진 이후로 남편을 두고 하소연은 줄어들었다. 봄꽃은 그렇게 화해의 물길을 만들기도 한다.
올해의 봄은 잔인했다. 날씨는 따듯해졌어도 몸과 마음은 한겨울처럼 시리고 고달팠다. 산불은 거세게 일어났고, 파면 선고는 더디고 더뎠다. 산불은 꺼졌고 파면이 내려졌지만 그 피해는 상상초월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을 거쳐도 온전한 회복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저 누리고 만끽했던 자연과 안전,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지금 봄의 얼굴은 왠지 비장미가 넘친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지긋한 목소리로 외치는 듯하다.
그 와중에 완연한 봄꽃처럼 화사한 그림책 모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멤버들과 토론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책과 삶이 빚어진 그들만의 문장들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거기서 나는 또 다른 봄의 얼굴을 보았다. 연대와 다양성 그리고 이야기. '프레드릭'이 한 겨울 양식을 위해 모았던 것들. 이 세개가 있다면 우리는 어디든 봄 같은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