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말에 일희일비하다
"엄마, 숟가락 줘"
"엄마, 물티슈"
"엄마, 치약 짜 줘"
"엄마, 형아가 밀었어."
"엄마, 안아줘. 나 먼저"
4남매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무수히 쏟아진다. 엄마 다음에 나오는 요청사항에 하나씩 반응하며 몸을 바삐 움직인다. 너무 서두르다 뜨거운 물에 데거나 식탁 모서리에 부딪힌다. 상처를 어루만질 사이도 없이 또 일어선다. '엄마'라는 버튼이 눌러지면 나는 로봇이 된다.
지치지 않고 감정도 없는 로봇과 달리 인간 엄마는 조금씩 무너져갔다. 잠깐이라도 앉아 있을 틈 없이 엄마라는 소리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화장실에 있을 때 엄마 소리가 들리면 분노가 치솟았다. 한동안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면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결국, "엄마 부르지 마"라고 외치고 말았다.
처음 "엄마"라고 들었을 때 가슴을 꽉 채웠던 감동의 물결은 어디로 갔을까. 4번이나 느꼈을 그 뭉클함. 분명 유일무이하고 강렬했던 추억이 마음 깊숙이 어디에라도 남아 있을 텐데.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이런 아쉬움이 들 때쯤 아이들은 엄마라고 부른 후 다른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들어왔던 예상되고 익숙했던 말이 전혀 아닐 때가 많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 고백부터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나 자기만의 생각들, 방어적인 혼잣말이나 반항 어린 외침들. 나는 아이들 말에 일희일비했다. 한없이 뿌듯했다가 소화가 안돼서 복통을 앓기도 했다. 가끔, 들었던 모든 말을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거부하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는 대단해. 어떻게 넷째까지 낳았어?"
"엄마, 작은 형의 마음은 이런 거야."
"엄마의 엄마는 어디 갔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는 나만 혼냈어. 억울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줘"
"엄마는 한 번도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한 적 없지?"
처음에는 아이들 말을 들으며 엄마라는 타이틀에 대해 고민했다. 나중에는 엄마 역할에 가려진 나라는 사람을 직면하게 되었다. 겹겹이 감쌌던 껍질들이 하나씩 벗겨졌다. 어디로든 날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4남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면 절대로 꿈쩍도 하지 않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밥이 되고 약이 되었던 아이들의 말들이 나를 키워내고 있다.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하려고 한다. 처음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사라진 곳에 '엄마' 다음으로 하는 말을 붙잡아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