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는 단어가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따귀를 직접 맞은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진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져보며 그럴 만한 일인지 아닌지 다시 판단해 본다. 남편에게 객관적으로 말해달라고 하면서 내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야 할 만큼 잘못한 것인지 물어본다. 남편은 말한다. 그냥 그런 말을 하지 마.
정말 어렵게 꺼낸 나의 취약한 부분이었다. 수년째 고민하며 끙끙 앓았던 문제였고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나눔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고 나누면서 더 정리가 되었으며 이제 내가 이런 이야기도 꺼낼 수 있구나 싶어 안도하는 찰나였다.
차가운 물싸대기를 맞은 듯 얼얼했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당연히 생각했다. 이런 전제? 기대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잘못되었다기보다 너무 순전했나, 아니 어리석었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이다. 내 말 중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 존재이다. 내가 그렇지 않은가. 어느 곳이든 이런 인간이 다 있다는 현실을 완전히 깡그리 잊고 있었다.
교회 소모임의 분위기는 서로를 신뢰하고 아껴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먹여 살렸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믿음이었으며 나도 모르게 기준을 한없이 높이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번의 싸대기 같은 사건이 있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상대방은 별 잘못이 없다. 자기는 들리는 대로 듣고 반응하고 싶은 대로 말한 것이다. 그의 실수나 연약함, 이런 부분은 자기 숙제일 뿐. 내가 왈가왈부할 부분이 아니었다. 나는 내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사람이나 모임을 가려가며 말을 했어야 했다. 특히 내 말의 주제가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경우라면 더더욱 조심했어야 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꼭 하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내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거나 새로운 통찰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의 연약한 부분이 드러나더라도 꼭 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후회하곤 했다. 맥락과 상황, 분위기와 상관없이 쏟아내는 나를 보며 내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 자료와 영상을 찾아보니 이는 일종의 중독 상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뇌과학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쾌감이 있고 여기에 골몰하면 중독으로 빠지는 것이다.
싸대기는 맞았지만 나는 이 중독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안 해도 된다. 꼭 하고 싶다면 믿을 만한 소수의 사람에게 하면 된다. 나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찾으면 된다.
이 사건은 나에게 중요했기 때문에 한 사람을 찾았다. 사실 요즘 남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신뢰하는 한 사람에게는 나누고 싶었다. 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속상함을 이야기했다. 한소끔 눈물을 흘리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상처 준? 그의 어떠함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런 사건을 계기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공동체란 이런 게 아닐까. 무지불식 간에 나의 문제가 드러나고 스스로 변화의 지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 좋은 분위기 속에서 성숙한 사람들에 의해 이런 부분이 드러나고 이해받으며 해소되면 좋겠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게 술술, 만만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쩌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소수의 작은 모임에서 덜 민망하게 일을 겪어 냈으니 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