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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28. 2022

우리 같이 산책할래요?

Jalan jalan


 ㅌ씨가 3박 4일간 롬복으로 간다. ㅌ씨는 내가 발리로 오기 전에 길리 아이르라는 작은 섬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롬복에 다녀와야 한다. 그동안 발리 여행을 많이 했는데 지금 코로나를 겪는 발리는 난생처음 보는 미지의 세계 같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누구보다 야무진 나였는데 여기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친구가 "ㅌ씨 없는 3박 4일 동안 우리 집에서 잘래?" 물어왔다. 고마운 마음으로 짐을 챙겨 친구네 집으로 간다.


발리에서는 다들 오토바이를 탄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적으니 인도 상태도 엉망진창이다. 보도블록이 깨져있거나 뜬금없이 커다란 구멍이 있기도 하고 오토바이들은 차가 막히면 인도로 불쑥불쑥 올라온다. 사람이 걷거나 말거나 쌩하고 지나간다. 오토바이 타는 걸 몇 번이나 배웠고 운전경력도 꽤 오래됐는데 여전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우리가 구매한 바이크는 PCX인데 내게는 무척 무겁고 커서 당분간은 고젝을 타고 다니기로 했다.  덕분에 많이 걷는다. 이 무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게 쉽지 않지만 재미가 있다. 차도 반대 방향이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건널 때에도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며 차가 오는지 확인한다. 차는 오른쪽에서 오는데 난 왼쪽을 보고 왼쪽 차량을 확인해야 할 땐 오른쪽을 보기 일쑤다. 미어캣처럼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다 재빨리 무단횡단을 한다. 신호등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발리에서는 누구나 무단횡단을 한다. 길을 걸으며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본다.


발리 사람들은 "조심하세요."라는 표현으로 경적을 울린다. 커브가 심한 골목길에선 혹시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올 사람이나 오토바이를 위해 속도를 낮추고 경적을 가볍게 빵 울린 다음 다시 속도를 높인다. 인도가 끊긴 골목에서 차도를 걷고 있다 보면 지나가는 모든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빵! 한 번씩 누르고 간다. 조심하세요! 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운전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화가 나서 빵빵 울려대는 경적에 늘 예민했는데 여기선 저 빵! 소리마저 정답게 들린다. 경적을 울리는 사람의 의도가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 8km 정도를 걸었다고 했더니 친구네 가족이 다 함께 걸어보자고 했다. 모두들 운동화를 단단히 챙겨 신고 시원한 물을 채운 텀블러를 가방에 넣어 비장하게 산책을 나섰다.



 크로보칸에 논이 많다. 논두렁 사이 걸을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어 논 한가운데로 걸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한가득 초록색이었다가도 며칠 후에 보면 벼가 누렇게 익어있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을 모조리 태워 새까만 흙이 드러난다. 그리고 또 다음날 지나가면 농부가 모를 심고 있다. 삼모작, 사모작이 가능한 발리에서는 논두렁이 가장 변화무쌍하다.


신나게 걸어보자 하고 나왔는데 여기저기 들러 사진도 찍고, 음료수도 마시고, 우연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친구를 마주쳐 반가워하다 보니 몇 걸음 걷지도 못했는데 복병이 등장했다. 라탄 소품을 파는 가게에서 대박 세일을 하고 있다. 이날은 마침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이었는데 독립기념일을 맞아 특별히 3일간 폭탄세일을 한다고 했다. 쇼핑 좋아하는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 가게로 들어간다.



라탄 소품 가게에서 멋진 도시락통을 발견했다. 손재주 좋은 발리니스들이 등나무 가지 하나하나 엮어 만든 소품들이 멋져 가게 구석구석을 살핀다. 한아름 고른 물건을 두고 흥정을 한다. 상인이 부르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깎아보았다. 코로나로 손님이 뜸한 가게 주인은 별수 없이 뒤에 붙은 자투리 금액을 마저 할인해준다. 마음에 드는 물건들 양손 가득 들고 나오니 더 이상 산책은 무리다. 다 함께 10km쯤 걸어보겠다며 배낭 가득 이것저것 메고 나왔는데 그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짐 많은 어른들을 돕겠다며 어린이가 라탄 도시락을 들어준다. 그 뒷모습이 귀여워 따라가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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