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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Aug 29. 2022

한적한 발리, 모든 곳이 닫혔다.

Petitenget beach pakir


2021년 7월 코로나 한가운데 발리는 을씨년스럽다. 늘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밤이 새도록 거리가 환하던 그 발리가 이곳이란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강화된 PPKM (거리두기)으로 카페나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관광지도 잠정 폐쇄 상태다. 바닷가도 마찬가지 모든 해변이 출입금지다.


이삿짐을 싸면서 스케이트보드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다. 막상 가져오긴 했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발리는 롱보드를 탈 수 있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짱구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파크에 가봤는데 짧은 보드 전용 공간에서 롱보드를 타니까 보드 바닥이 다라라락 긁혔다. 기왕 이 길고 무거운 스케이트보드를 수고스럽게 들고 왔으니 아직은 포기할 수가 없다. 스미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한산한 바닷가 주차장을 기웃대 봤다. 해변을 들어갈 수 없으니 주차장 또한 차가 없다. 이상한 외국 여자가 제키만한 보드를 들고 주차장을 기웃대고 있으니 주차장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 바다에는 들어가면 안 되지만 주차장에서 놀다 가는 건 괜찮으니 들어와서 놀다 가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짐작으로 헤아려 먼저 말을 걸어주니 고맙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혼자 보드를 다라락다라락 타고 있자니 덥기도 하고 스스로가 웃기기도 했다. 문닫힌 바닷가를 철창 너머로 본다.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가면 바다가 있는데 갈 수가 없다.


말은 이렇지만 현지인들과 소수의 외국인들은 차단봉을 뛰어넘어 바다로 들어가기도 한다. 경찰이 단속을 하러 나오기도 하는데 특별히 제지는 하지 않는다.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사람이라 굳이 담을 넘어가면서까지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발리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바다조차 갈 수 없다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다. 내 생활은 한국에서랑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백수이기까지 하니까 처량한 기분도 들었다. 직장인일 때 퇴근하고 보드를 타러 나가는 것과 백수가 할 일 없어서 보드를 타러 나오는 게 하늘과 땅 차이 기분이다.


내가 보드를 타러 나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본 멋진 영상을 떠올리며 그런 걸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타고난 쫄보는 그런 걸 못한다. 넘어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저런 걸 연습하기 어렵다. 나는 넘어지는 게 싫다. 넘어지는 게 싫어서 보드를 탈 때도 그냥 타기만 한다. 시속 5km쯤의 속도로 달리며 옆에 핀 꽃을 구경한다거나 살랑살랑 부는 바람같은 것들에 행복을 느낀다. 사람들은 롱보드를 탄다고 하면 자꾸 발재간 같은 것을 기대하는데 그런 걸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인생에서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취미 생활을 하면서까지 넘어져야 한다면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만 같다. 난 그저 이걸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는데 만족할 뿐이다.




2021년 7월 철창 너머 바라볼수밖에 없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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