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설화
수많은 섬들의 나라, 각기 다른 종족의 사람들과 종교가 모여있는 곳 인도네시아에는 설화도 많다.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신화속에 자바 섬과 발리섬이 어떻게 갈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자바섬 동쪽에 살고 있는 만트라는 믿음이 깊고 행동이 올바르며 성품이 어질어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예쁘고 착한 아내가 있지만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 걱정이었다. 아내의 권유로 몇 달 동안 신께 제사를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한 끝에 건강하고 잘생긴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이름을 앙크란이라 지었다.
그런데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속에 자란 앙크란은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고 결국엔 노름에 빠졌다. 그 많던 재산은 앙크란의 노름으로 사라지고 만트라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노름에 빠져 집을 나갔던 앙크란이 다급히 집에 찾아왔다.
"빚 때문에 노름꾼들에게 쫓기고 있으니 아버지가 대신 좀 갚아주세요."
하나뿐인 아들의 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만트라는 다음날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종을 들고 동쪽 끝에 있는 아궁산으로 갔다. 아궁산 꼭대기에서 만트라가 신력이 깃든 종을 울리며 주문을 외우자 용이 나타났다. 집채만 한 용의 몸에는 온통 황금 비늘이 덮여있고, 꼬리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
용이 몸을 비틀자 비늘 속에서 보석이 우수수 떨어졌다. 만트라는 용에게 감사를 표하며 보석들을 그러모아 집으로 돌아왔다. 앙크란의 빚을 갚고 이제 땀 흘려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앙크란은 남은 보석을 들고 다시 집을 뛰쳐나가 노름을 했다.
들고나간 보석마저 탕진한 앙크란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졸랐다. 그러나 만트라에게는 더 이상 남은 보석이 없었다. 앙크란은 아버지가 보석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어머니를 추궁해 알아냈고 그날 밤 신력이 깃든 종을 훔쳐 달아났다. 아궁산 꼭대기에 다다른 앙크란은 종을 흔들어보았지만 주문을 몰랐다. 만트라의 종소리만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용이 나타나자 앙크란은 사정을 말했다.
"제발 저에게 한 번 더 보석을 주세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어요."
용은 믿음이 신실한 만트라를 좋아했으므로 앙크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노라 하며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
용의 비늘에서 떨어지는 보석들을 주워 담은 앙크란은 나쁜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숨겨둔 칼을 꺼내 커다란 보석이 달린 용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분노한 용이 달아나는 앙크란의 발을 살짝 핥자 앙크란은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 죽고 말았다.
신력이 깃든 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만트라가 아궁산으로 달려왔을 땐 이미 앙크란이 한 줌 재로 변한 뒤였다. 비통에 빠진 만트라가 용을 부르는 주문을 외웠다. 모습을 드러낸 용에게 만트라가 아들을 한 번만 살려달라 애원했다. 만트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가진 용은 그가 애처로웠다.
"앙크란은 이 아궁산 밑에서 백일동안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만 내 꼬리가 다시 자랄 것이다. 그리고 백일이 지난 후에도 앙크란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용은 만트라에게 지팡이를 하나 건네며 이 지팡이로 앙크란이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도록 땅을 가를 것을 명했다. 만트라는 되살아난 아들이 아궁산에서 백일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슬펐지만 용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일이 지난 후 아궁산을 떠난다. 앙크란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에 도착한 만트라는 지팡이를 들어 땅을 내리쳤다. 땅이 서서히 갈라지더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점점 차올라 아궁산이 점처럼 작게 보였다. 그렇게 앙크란은 발리섬에, 만트라는 자바 섬에 살게 되었고 두 섬 사이에 생긴 바다를 발리 해협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