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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r 14. 2023

스미냑 헌책방

골목길 산책


 스미냑 골목을 걷다 보면 “Book shop” + 화살표 그림이 그려진 쪽지를 자주 발견한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흘리고 간 빵 부스러기처럼 이리 오세요 내게 손짓하는 저 책방 이정표에 홀려서 직접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쩐지 저기 가면 재밌는 걸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대충 이렇게 생겼다

골목길 사이사이에 붙은 이정표들을 따라가며 어떤 서점이 나타날지 상상해 봤다. 규모가 작지만 깔끔하고 재밌는 책들을 갖고 있는 동네 서점을 떠올리며 이정표를 찾는다. 코너를 돌 때마다 보이는 흰 바탕에 빨간 글씨로 Book shop이라 써 붙은 종이가 마치 보물 찾기하며 두 번 접힌 쪽지를 발견하는 것처럼 신났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니 그런데

여기가 책방인가요 나의 과자집이 이곳인가요 구체적으로 뭘 상상하고 온건 아니지만 달콤한 과자 부스러기처럼 귀여운 이정표로 홀린 것치고는 외관이 허름해서 허탈한 웃음이 난다.

안에는 급하게 만든 것처럼 생긴 책장 몇 개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책들이 잔뜩 꽂혀있었고 오래된 책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아마도 이 책들은 가방이 무거워 덜어낼 짐을 궁리하다 큰 고민 없이 빼버린 관광객들의 책일 것이다. 해변에서 태닝을 하며 읽으려고 챙겼거나 그저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혼자 카페에 앉아 읽어야지 하며 들고 왔을 책들. 발리 여행 중 늘어난 짐 무게를 덜어내기에 여행 중 다 읽은 책은 최우선순위일 것이다.


 희망을 놓지 않고 뭔가 재미난 게 있을까 싶어 열심히 책꽂이를 뒤졌다. 이국의 언어로 써진 낯선 요리들이 담긴 책이나 귀여운 삽화가 있는 그림책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단어 읽을  없는 말로 써진 책들도 많았다. 책방 주인은 물건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이 책 저책 뒤지기만 하는 손님이 귀찮은 모양이다. 뭘 찾고 있냐 퉁명스럽게 묻고는 이제 문을 닫을 거니까 얼른 고르라고 재촉한다.


 길거리 여기저기 붙어있던 이정표들을 보고 상상했던 작은 책방, 다정한 주인, 재밌는 책들 세 개가 모두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간 골목길 여기저기 붙어있던 화살표로 나를 오라 손짓하던 스미냑 서점이라는 곳의 실체를 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산책이었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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