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o:r

(17) 미ㄹㅗㅓ [ D-day 1 ]

by hase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저녁 바람을 맞고 싶어서일까 나는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세상을 원망한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한숨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는 담배 연기를 지나 차가운 입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손과 발이 얼어 감각이 무뎌진다. 물론 나의 마음도 이와 같이.


무뎌지는 감각에 내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감정이다. 이 느낌을 평생 갖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한발자국만 앞으로 가서 이 높은 옥상에서 떨어지기로 마음 먹은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 마음과 함께 세상을 떠나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없어져도 슬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야”

“나 같은 건 세상에 필요 없어.”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후회하지 않아, 나는.”

.

.

.


“정말 그럴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이었다.


“무슨 말이야..?”


“떨어지게?”


“….”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그 녀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 밑 벤치 위에 자고있는 정장 입은 아저씨 보여? 술을 잔뜩 먹은 것 같네.”

“저 사람은 저기에 사는 노숙자일까?”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당황한 듯 입을 열어 되묻는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 녀석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네가 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할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술 마시고 바닥에 누워 밤을 보내는 저 사람처럼 말이야”


“당연히 싫지”


“왜?”


“누가 이 추운 날씨에 노숙자를 하고 싶어 하겠어?”


녀석은 내 말을 듣고 생각이라도 하는지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만이 흘러간다.

.

.

.


“너보단 나아.”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났을까 녀석은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와 함께 섬뜩한 기운이 나를 휘감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불쾌한 듯이 화를 내며 말했다.


“뭐? 내가 뭘 했는데? 그게 네가 할 소리야?”


"난 너에 대해 잘 알아. 그러는 넌?"

"넌 표면적으로 밖에 세상을 보지 못해 그러고는 단정을 지어버리지."


"저 사람은 노숙자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 바보같은 상태이지. 너랑 다를 게 없어"

"이건 네가 표면적으로 밖에 보지 못한 세상"

"집에 가면 자신을 반여줄 가족이 있고, 그런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이겨내지. 과연 저 사람의 책임감의 크기가 너와 같을까?

"힘든 업무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뒤로 한 채 회사에서 하는 회식에 참석해, 술자리를 가진다. 상사가 주는 술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먹은 것 같네. 여기서 중요한 건 몸을 못 가눌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많이 마셨을까?"

"이건 내가 표면적으로 바라본 세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야"


“넌 그 정도로 힘들다고 말 할 수 있겠어?”


"넌 제대로 힘들어본 적이 없는 거야"


“너는 아직 더 힘들어야 돼”


“여기서 죽기엔 너무 아까워”


“네가 죽으면 내 삶의 낙이 사라지잖아”


녀석은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내게 계속해서 말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섬뜩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내 장난감은 내가 지켜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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