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관계란?

거절의 미학

by 씀씀이

1. 나의 단점 중에 하나는 '거절을 못하는 것'이다. 사소한 일부터 어떨 때는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내 일의 우선순위를 바꾸면서까지 남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으로부터 평판은 좋았으나 개인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개인적 성과가 나지 않다 보니 남들보다 성장이 느려졌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열린 사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 요청에 흔쾌히 나서는 나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부르며 서서히 망가져 가는 삶을 외면했다.


신경끄기의 기술 중

2. 사진 구절을 읽으면서 마지막 연애 상대가 떠올랐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건전했는가? 그분은 건전한 마인드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거절에 취약하다.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지도 못하고,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도 못한다. 일례로 친한 사이에서 약속을 잡을 때 여러 사유로 인해서 약속이 파해지면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올라온다. 이게 친하면 친할수록 더 심한데, 연인 사이에선 가장 첨예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거절에 대한 소소한 복수, 삐짐 등이 있었고 상대가 미안하다며 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사과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거 다 맞춰주는데 왜 당신은 내 요구에 거절하느냐. 이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싸움의 시작은 이곳이었다.

반대로 그분은 거절과 친한 사람이었다. 나의 요구를 거절할 줄도 알았으며, 상대의 거절에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연애 초반에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잘못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즉시 이야기해줘. 내가 상처 받을 거라 생각하지 말고 있는 대로 말해줘." 또는 옷을 사러 갈 경우에는 어떠냐는 질문에 내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대자 "좋으면 좋고 아니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라고 말해서 안 어울리는 옷은 안 어울린다고 말해주면 알겠다며 내 의견을 수용해주곤 했다.


3. 경계는 건전한 관계를 위한 필수요소다. 글귀 옆에 그려진 두 나무는 예전에 지혜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나무들도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간격이 필요하다'는 글이 떠올라서 그린 것이다. 두 나무는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줄기와 가지를 가진 나무처럼 보이지만 흙 속에 뿌리들은 서로 만나고 엉켜 붙어 태풍이 오거나 물에 잠기더라도 휩쓸리거나 뽑히지 않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 관계를 형성할 때 서로 이런 존재이길 바란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가치관과 경계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서로 유대하는, 필요할 땐 언제든 도움을 청하고 거절할 수 있는 관계.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 바로 서야 거절할 수 있고, 거절을 통해 내 가치관이 형성된다. 흐릿한 경계와 긍정주의로 가득 찬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오늘부터 거절하기를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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