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나
#책
돌잡이 때 책을 잡았다.
보통 돌잡이 때는 책이 아닌 연필을 놓아두는데, 내 돌잔치 때는 집에 연필이 안보여서 엄마가 임의로 책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그때부터였을까.
부끄럽게도 어린시절에 집안일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심부름이라도 시킬라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책을 들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기가 차기도 하고, 한편으론 당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에서 내버려뒀다고 했다.
어릴 때 우리집에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독서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독서를 좋아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크고나서 당시엔 내게 책을 읽힐 요량으로 책 읽는척 한거라 시인하고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때는 나랑 비슷하게 책을 매우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책 읽기 대결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중에는 승부욕에 불타서 일부러 쉽고 얇은 위인전만 골라 읽을 때도 있었다(친구야 미안).
중학교 때는 모두가 싫어했던 깐깐한 국어교사 출신 교장선생님께서 세계명작을 학급 수에 맞춰서 3,40여 권 사서는 한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읽게 하셨다. 사실 많은 친구들이 읽는 척만 한 것 같았는데, 나는 진짜 읽었다^^; 덕분에 사춘기 감성 낭낭했던 시절에 주옥 같은 명작들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교장선생님께 감사하다.
고등학교 가서는 나에게 더 이상 독서를 권하는 사람이 없어서 한동안은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연히 친척의 소개로 인문학 수업을 듣게 되면서 수준 높은 인문학책들을 한 달에 4,5권씩 읽을 수 있었다.
대학 때는 늘어난 여유시간만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서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서점이 우리집이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작은 서점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 참 행복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오고가며 시간날 때마다 시내의 대형서점에 들러서 책구경을 하고 마음이 동하면 서점을 나올 적엔 꼭 책이 한두권씩 내 손에 들려있곤 했다.
그리고 그때 즈음 우연히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는 책마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꿈을 안고 유럽의 여러 책 공간을 탐방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유럽에 가게 되면 책공간을 꼭 방문해보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은 2015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