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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허브 Mar 03. 2023

에브리데이 유머데이 : 쓸모없는 세계의 즐거움

치밀한 농담의 기저에는 슬픔이 있으니까

절친한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편의상 ‘권박사’라고 통칭하겠다만 그는 실제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다. 나와 같은 대학의 학사를 졸업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박사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유는 그가 여느 Ph. D 못지 않게 영특하며 지적으로 왕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를 찌르는 블랙 코미디 유머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것은 진짜 박사들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권박사를 괄호 안에 넣은 채 나의 이십 대 시절을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각별한 추억이 많다.  

이분이 Mr. 아담 드라이버다.

권박사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방학 중 일본어 수업에서였다. 권박사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은 일본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2학기에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은 남의 나라 돈을 받고 유학하는 우리가 혹여 일본어를 절뚝거릴까 못 미더웠는지 ‘섬머 인텐시브 재패니즈 코스’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의 수업을 열어주었다. 대강의실 벽에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의 장엄함이었다. 다행히 수업 장소는 아담한 인문대 강의실이었다. 그곳에서 권박사를 만났다. 권박사의 첫 인상은 사뭇 강렬했다. 코가 무척 컸고 (나중에 생각났는데 미국 배우 아담 드라이버를 닮았다) 정체 불명의 러시아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심지어 왼쪽 팔 부분에 빨간색 완장 표시가 있어 나는 처음에 그가 레닌주의자인 줄 알았다)  


권박사는 당황하면 검지 손가락으로 코를 긁는 버릇이 있다. 대개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분위기가 전개될 때 이 버릇이 나온다. 그 다음엔 ‘푸핳’하는 소리를 내며 풍선이 터지듯 웃는다. 나는 이 두 가지 버릇을 일본어 수업 첫날 보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교수님이 각자 좋아하는 가수를 말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권박사는 자신만만하게 ‘유명하지 않은 가수라 잘 모를 텐데…’며 입을 열었다. Y언니와 나는 그 다음 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영국 밴드 The 1975를 좋아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와 나는 ‘오, 나도 아는데!’, ‘오늘 학교 올 때도 들었는데!’라며 오디오를 겹쳤다. 레닌주의자 권박사는 이렇게 적극적인 관중은 처음 본다는 듯 코를 슥슥 긁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푸핳, 하고 웃었다. 슥슥과 푸핳.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권박사 사운드였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같은 해 10월이었다. 우리가 공부했던 일본 도시는 복숭아가 지역 특산물일 정도로 제법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골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낙엽 더미를 지나거나, 공원에 앉아 오리를 보거나, 패밀리 마트에 들러 신기한 아이스크림을 구경했다. 한국식 치열함으로 분석해보면 ‘생산성 제로’라는 판정 결과가 나올 것 같은 평화로운 날이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삶에서 때로는 심심한 순간이 필요하다. 할 게 없어서 심심하고 무료해질 때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쫓기듯 촉박하게 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조차 낭비로 느껴진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것들은 어딘가 좀 쓸데없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권박사는 나에게 ‘쓸모없는 세계의 즐거움’을 알려줬다. 권박사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었다. 게임, 캐릭터, 메탈 록. 현실적인 아웃풋이 없고, 원가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며, 시끄럽게 머리를 웅웅 울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처음부터 설득당할 생각은 없었다. 권박사가 진심을 다해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매료되었을 뿐이다. 가장 먼저 접한 세계는 게임이었다. 교양 수업 때 ‘게임 안 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는 강사의 질문에 나 혼자 손을 번쩍 들었을 만큼 나는 오락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해본 핸드폰 게임은 쿠키런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몰두하는 것에 비해 현실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팡팡 터지는 화면과 특수효과에 일회적 즐거움을 느끼고 있자면 마음 한 켠이 불안해졌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지금 할 게 산더미인데, 하면서. 유희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조급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놀라운 영상미의 <언차티드4>는 명작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게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는 권박사가 애지중지하던 게임을 어깨 너머로 지켜본 이후부터였다. 권박사는 플레이스테이션 4를 어찌나 아꼈던지 여행용 캐리어 한 쪽을 아낌없이 할애해 유학길에 모셔왔다. 일본 도착 첫날 전자용품점에 가서 무려 15만원짜리 모니터를 사기도 했다.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 (그리고 유학이 끝날 때 현지 유학생에게 무상 기부하고 홀홀히 떠났다) 좋아하는 것에 돈을 탕진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권박사가 틈이 날 때마다 즐기던 <언차티드4>라는 게임 역시 충격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아바타를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에 버금가는 영상미였다.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게임이라고 하면 카트라이더, 메이플 스토리밖에 모르던 내 세계에 커다란 금이 갔다.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는 관계다. 나의 좁은 세상을 넓히고 타인의 바닥을 존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게임 = 시간 낭비’로 획일화됐던 나의 아둔한 도식에 수많은 변수가 생겼다. 관심이 없어서 무지했고, 무지해서 외면해왔던 것뿐이었다. 현실적인 아웃풋이 없다는 나의 자조 아래 얼마나 많은 게임 업계 종사자들의 노력과 게임 유저들의 즐거움이 소거됐을까. 현재의 게임 기술은 쿠키런에서 멈춰 있던 나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었는데도. 게임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권박사의 두뇌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찰나에도 권박사는 문제를 턱턱 풀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고 다시 공부에 몰두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절반만 놀던 나와는 달랐다. 권박사는 완전히 놀고 완전히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불안감도 없이.  



이브이의 진화 체계. 나중에는 나 역시 빠져들고 말았다..


캐릭터에 관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권박사는 철학 전공으로 매사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코를 슥슥 긁으며 아도르노 철학책을 읽는다. 그런 권박사의 기숙사 커튼 뒤에는 의외의 물건이 있었다. 한국에서 정성껏 챙겨온 이브이 (맞다. 포켓몬의 그 이브이다) 8마리 인형이었다. 권박사의 여행용 캐리어에 플레이스테이션 4와 이브이 8형제가 있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권박사와 이브이라니. 마동석과 헬로 키티처럼 도무지 연결이 안 되는 조합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왜 이브이를 좋아하냐 물었다. 권박사는 이브이에겐 진화의 알레고리(은유법)가 있기 때문이라 답했다. 귀여운 이브이가 물, 불, 전기, 얼음, 어둠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흥미롭다며. 이브이는 8가지 형태로 진화하기에 총 9마리가 되어야 하는데, 마지막 인형 하나를 못 구해 너무나 비통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한 마리를 찾아주기 위해 아마존을 뒤졌지만 끝내 사지 못했다. 다시금 비통해하는 권박사에게 이렇게 위로했다. “불완전성이 완전성의 미학을 빛내기도 한다”고. 우리가 친구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주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교집합만 있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권박사는 싫어했다. 나의 소울 푸드인 커피, 양파, 토마토를 권박사는 끔찍히 싫어했다. 그래서 함께 햄버거를 먹는 날이면 대부분의 재료는 내 차지였다. 치킨을 먹어도 나는 퍽퍽살, 권박사는 닭다리와 윙을 좋아했다. 다른 점이 많아서 부딪힐 일이 적었다. 자신의 영역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영역도 터치하지 않는 게 암묵적으로 합의됐기 때문이다. 권박사와 나의 우정을 지탱해준 건 지적 교양을 위한 갈망과 약간의 유머였다. 앞서 말했듯 권박사는 블랙 코미디에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권박사의 시니컬함이 뜻밖의 위로가 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귀국 후 대학에서 함께 취업 준비를 했다. 최종 면접 전 건강 검진을 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었는데, 권박사는 채혈까지 하고 탈락한 자신의 신세를 ‘권박사 매혈기(허삼관 매혈기의 패러디)’라고 자조했다. 분명 안타까운 상황임에도 씁쓸한 유머에 웃음이 났다. 웃음과 함께 괴로움이 희석됐다. 권박사의 유머와 함께라면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치밀한 농담의 기저에는 슬픔이 있다.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 유머다. 항상 환하게 웃는 사람 뒷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있는 것처럼. 삶의 틈을 파고들어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유머인 것이다. 내가 아주 어둡고 바닥이던 시절 권박사는 매일 하나씩의 유머를 건넸다. 숨겨진 유머를 발견하고 ‘오늘도 유머데이인가요?’라고 물으면 권박사는 ‘에브리데이 유머데이입니다!’라고 화답했다. 정말로. 권박사와 함께 했던 대부분의 시간들이 유머데이였다. 가장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으니 상호 구원 관계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이길 바란다. 권박사가 나의 환갑 잔치 때 코를 슥슥 긁으며 사회를 보다가, 멋쩍은 분위기에 푸핳, 하고 웃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우정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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