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혜 Dec 07. 2022

[공기의 기록] 20221207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내가 궁금해졌다.





일기를 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내왔다. 그랬던 기간 동안은 하루를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후회되는 일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등단을 했다. 상상도 못 한 결과였다. 그 뒤로 가벼운 글을 (그러니까 공개된 곳에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모든 단어와 문장이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기쁜 일도 있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또다시 방황의 시작이었다. 허송세월을 보내다 다시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라? 연구를 하고 책을 읽으니까 잊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부단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이렇게 좋아하는 애였지. 맞아 나 이 작가 좋아했어. 이 영화 좋았지. 이 철학자 좋아했어. 그렇게 과거의 궤적을 쫓다 문득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던 건 자기 학대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래 침묵했다. 말수가 줄어든 만큼 나를 괴롭힌 스스로의 윤곽을 되짚어보았다. 맙소사. 그러니까 나는 나를 너무 많이 미워했었다. 다행히 과거형이다.





나는 나를 왜 싫어했을까. 스스로를 혐오했던 것 같다. 인생이 굴곡지던 순간 제때 반듯하게 대처해내지 못했다는 후회로 나 자신을 미워했다. 나를 공격하고 넘어지게 한 상황이나 사람들보다, 내가 미웠다. 남을 공격할 수 없는 마음을 제일 만만했던 나에게 돌린 것이다. 그때의 내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지금 내가 덜 힘들었을 거야, 하는 심정이었다.(그랬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이므로 결과적으론 나는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놓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고 우울했던 것 같다. 무기력한 나날이었다. 내가 해낸 일을 과소평가하고 해내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저희 엄마는 제가 크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셨을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 같은 사람 너무 멋있어요. 선생님같이 살고 싶어요."


가르치는 아이 앞에서 창피한 것도 모르고 속절없이 울며,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타인의 앞에서 운 게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를 멋있다고 해주는 열일곱 꼬맹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지? 왜 그렇게 자신에게 매몰찼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단 나부터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네가 나를 살렸다는 걸 알아야 해,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한텐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어."

"예? 제가 뭐라고 했는데요?"

"몰라. 바보야."


그러므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기, 누구도 읽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기록.

오랜만이야, 공기의 기록.








 

작가의 이전글 기억(록)할 만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