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午年 첫 山行은 역시 北漢山(836.5m)

by 이흥재

2026년 1월1일 목요일 맑음


™ 코스 : 북한산우이역(우이신설경전철)~ 백운대탐방지원센터~ 하루재~ 백운대피소~ 백운대~ 백운봉암문~ 대동사~ 보리사~ 새마을교~ 서암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구파발역(3호선)


오늘도 여느 해처럼 새해 첫 산행지인 북한산엘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개롱역으로 나간다. 일기예보를 통해 오늘 꽤 추울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밖으로 나가니 예상보다 더 추운 것 같다.


개롱역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가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성신여대입구역까지 가서 다시 우이신설선을 타고 종점인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렸다. 2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는데 아직은 주위가 어두워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두리번거리다 삼양로177길을 따라 올라갔다.


조금 가다 보니, 시내버스 종점 맞은편에 있는 도선사(道詵寺) 셔틀버스 주차장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는 걸 보고 나도 줄을 서려고 하니 그 줄이 꽤 길다. 그래도 2.2km를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는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기다리기로 했다. 결국, 버스 2대를 먼저 보내고 세번째 버스를 타고 안전하고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스가 쉬지 않고 계속 왔기 때문에 많이 기다리진 않았다.


도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末寺)로, 신라말 도선대사(道詵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 절을 도성암(道成菴)이라 하고, “삼각산 동쪽에 있는데, 정의공주 원찰이다(在三角山東, 貞懿公主願刹)”라고 기록돼있고,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지낸 계파성능(桂坡性能)이 지은 <북한지 (北漢誌)>에도 “산성 동문 밖에 있는데, 정의공주 원찰이었다. 지금은 폐지됐다(在東門外 貞懿公主願刹. 今廢)”고 기록돼있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딸로 안맹담과 결혼했는데, 1477년 죽었다. 그러니까 도선사는 정의공주 사후(死後) 창건됐다가 <북한지>가 편찬된 1745년 이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도선사는 철종과 고종 때인 19세기 이후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선사 셔틀버스는 아침 7시25분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와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앞에 있는 ‘백운대 가는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올라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니, 이 시간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언제 올라간 거야? 일출을 보기 위해서라면 아직은 시간이 안됐고, 새해를 맞기 위해서라면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이 길로 내려온 적은 있지만 올라가긴 처음인데,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게다가 군데군데 얼음이 있어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겠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도 꽤 있다. 나도 배낭에 아이젠을 휴대하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착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냥 올라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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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산길이 좁다 보니 정체가 생긴다. 더구나 한 줄로만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어떻게든 올라가겠는데 두 줄로 내려오니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잠시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한줄로 내려와달라고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더 오르다 보니 내려오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돌아보니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둥근 해는 보이지 않고 주위만 발갛게 물들어있다. 나도 사진 몇 장을 찍고 계속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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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53분, 인수암을 지나는데 뒤에는 인수봉이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발갛게 타오르고 있고, 입구 기둥에는 “상중무불 불중무상(相中無佛 佛中無相)”이란 글귀가 쓰여있다. “허상에서 부처를 찾아봐야 당연히 부처는 없고, 부처에게도 상은 없다”는 말로, 헛 것 붙들고 고민하지 말란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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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18분, 하루재를 지나 백운대피소에 도착했는데,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피소 안은 물론 밖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춥긴 하지만 따뜻한 국물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하다.


백운대피소(白雲待避所) 자리는 1924년 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산장인 백운산장(白雲山莊)으로 운영돼왔는데, 1992년 6월 화재로 소실됐던 것을 1998년 현재 모습으로 건축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대피소를 철거하고 자연복원 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최초의 산장이란 역사적 가치와 존치를 바라는 산악인의 의견을 수렴해 2017년 5월,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정표를 보니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까지는 200m, 정상인 백운대까지는 500m 남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점이라 쉽게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백운봉암문을 지나 본격적인 암릉을 올라가려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에 올라간 거야!


암릉에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는데,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현장에 나와있는 관리자들 말을 들어보니, 새벽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정상이 너무 추워 급히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두 길을 모두 사용해야만 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는 저체온증에 걸린 이도 있다고 했다. 기다리다 보니 특수구조대원 여럿이 한 젊은이를 부축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민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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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내려가고부터 올라가는 길을 열어주긴 했지만, 정상에 도착하도록 내려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정작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비교적 한가로웠다. 그래도 정상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이곳의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 말했다. 잠시만 노출해도 모두 얼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줄을 서있다 보면 앞 사람 사진을 찍어주게 된다. 그런데 다들 정상석이 아니라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처음으로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곧바로 정상에서 내려왔다. 전에는 정상 바로 아래 마당바위에 앉아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내려왔었지만, 오늘은 너무 추워서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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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내려오다 보면 삼각산(三角山) 안내문이 있다. “삼각산은 백운대 (白雲臺 836.5m)•인수봉(仁壽峰 810.5)•만경봉(萬景峰)으로 구성돼있다. 고려 수도인 개경에서 이 봉우리들이 세 뿔처럼 보인다 해서 삼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온조(溫祚)와 비류(沸流)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곳을 정했다고 하는데, 이때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 것이다.”


안내문 밑에는 태조가 지은 <백운봉에 올라>란 시가 쓰여져 있다. 이 시는 <연려실기술>에 실려 전하는데, 그 원문은 이렇다.


登白雲峰 백운봉에 올라


引手攀蘿上碧峰 칡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 흰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앉아있네.
若將眼界爲吾土 눈앞에 펼쳐진 땅이 모두 내 것이라 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중국 중원과 강남 땅인들 어이 마다하리.


올라오는 동안 워낙 많은 사람들이 내려갔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그래도 경사가 급하고 드문드문 얼음이 있으니 만사 조심해야만 한다.


백운봉암문까지 무사히 내려와, 올라올 때와는 반대 방향인 대동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백운봉암문은 1711년(숙종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로, 위문(衛門)으로도 불렸다. 원래 문짝이 있었지만 원형 지도릿돌과 방형 구멍만 남아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9시39분, 대동사(大東寺)에 도착했다. 이 절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 창건됐으며, 이듬해 세워진 대웅전•칠성각•종각• 산신각•요사 등이 있지만, 올라가보진 않았다. 이정표를 보니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 2.5km 남았다.


산을 다 내려오고 나면 등산로 초입에 보리사(菩提寺)가 있다. 그런데, 이 절에 대한 내력은 잘 알 수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57년 ‘구름 속에 높이 솟은 누각’이란 뜻의 등운각(登雲閣)이 있던 자리인데, 어느 땐가 조계종 소속 사찰로 개조됐다고 한다. 다만, 보살의 수행목표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함)에서 온 이름이란 건 알겠다. 즉, ‘보리’는 깨달음을 뜻한다.


예전 ‘북한동역사관’ 건물을 지나 계곡탐방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포장도로는 걷기 편하지만, 거리는 400m쯤 더 멀다. 그래도 예전엔 대부분 포장도로를 따라갔는데, 오늘은 새로운 길로 가보기로 한다.


오전 10시09분, 서암사(西巖寺)를 지난다. 서암사는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조 이후 북쪽 수문일대 산성수비를 위해 승려 광헌(廣軒)이 민지사(閔漬寺)란 이름으로 창건했는데, 고려 충숙왕 때 정승을 지낸 문인공 민지(1248~1326)의 유지(遺址)가 그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서암사라 부르게 됐다. 1925년 7월 대홍수로 매몰됐던 것을, 2006년부터 복원사업을 진행중이며, 지금은 대웅보전과 다른 건물 한 채가 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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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13분 수문유지(水門遺址)를 지난다. 북한산성에는 두 곳에 수문이 있었는데, 다른 한 곳은 중성문(中城門) 옆에 있었다. 수문은 배수시설이지만 적의 침투에 대비한 철책시설을 마련했는데, 수구공사를 지휘하는 수구패장(水口牌將)을 별도로 둘 정도로 고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한 시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파괴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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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구파발역으로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