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冠岳山 629m), 관악산역~정상~사당역

by 이흥재

2026년 1월8일 목요일


™ 산행코스 : 관악산역(신림선)~ 연주대(정상)~ 사당역


엊그제, 올 상반기 산행계획을 세웠다. 먼저, 산에 가는 방법은 3가지다. 첫째, 지하철과 버스로 가는 방법. 주로 서울근교 산들이다. 둘째, 자동차로 가능 방법. 주로 경기도에 있는 산들이지만, 강원도(치악산•삼악산)나 충청도(월악산)에 있는 산들도 있다. 대부분 100km 이내에 위치해있지만, 치악산이나 월악산처럼 좀 멀리 있는 산들도 있다.


셋째, 하루나 이틀 묵어야 하는 원정산행인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설악산이나 소백산처럼 대피소에서 묵는 경우도 있고, 태백산이나 속리산처럼 숙소에서 묵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외적인 경우는 계룡산처럼 기차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자동차 산행의 경우 지하철과 전철로 갈 수 있는 산들도 있지만, 너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검단산은 자동차로 가면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지하철을 타면 한번 갈아타고도 등산로입구까지 한참 걸어가야 해서 1시간 반가량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암튼, 여느 때와 같이 매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동차 산행은 월 1회, 원정산행은 분기 1회 정도 다녀올 계획이다. 그러니까, 서울근교 산들은 1년에 2번 이상 다녀올 수 있지만, 자동차 산행이나 원정산행은 2년에 한번쯤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에 따라 오늘은 관악산엘 가기로 했다. 관악산 등산코스를 여러 갈래가 있는데, 오늘은 관악산역에서 출발해 사당역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그런데, 관악산역까지 가려면,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올림픽공원역까지 가서 9호선으로 갈아탄 後, 종합운동장역에서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림역으로 가서 신림선을 타고 관악산역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이다.


관악산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아침 7시17분인데, 아직은 해가 뜨지 않아 주위는 밝지 않았다. 처음 마주하는 관악문 사진도 찍을 수 없을 정도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친다.


오전 7시30분, 관악산 호수공원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세워둔 미당 서정주 시비(未堂 徐廷柱 詩碑, <冠岳區에 새해가 오면>)가 아직도 건재하다. 시비 오른쪽 귀퉁이에는 “서정주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문학을 발표해서 2002년 ‘일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돼있기 때문에 시비를 이전• 철거할 예정”이란 관악구의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대로다. 처음 이 시비를 세울 때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철거예정’이란 안내문은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그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다는 건데, 굳이 누구 보라고 이런 안내문을 붙여 놓았는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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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건국초반부터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득세하다 보니, 해당이 되고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 타령이다. 이제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 텐데. 물론, 일본과의 갈등이 전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정도다. 차라리, 북한이나 중국 등 공산주의와의 갈등이 더 심각하지 않은가! 여차하면 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언제나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으니까. 지금도 한국전쟁의 연장이다. ‘휴전(休戰)’ 상태니까. 하지만, 그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니,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호수공원 끝에 있는 정자(紫霞亭)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비교적 평평한, 돌이 깔린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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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쉼터를 지나 7시48분, 계곡을 가로지르는 목교 앞에 도착했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 ‘강감찬 전설’에 대한 안매문이 세워져 있다. “강감찬이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관악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없앴다. 강감찬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였다. 강감찬 장군 탄생지를 기념하기 위해 낙성대에 사당 안국사(安國祠) 를 지어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낙성대공원을 조성했다.”


마지막에 사실적인 얘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황당한 얘기들이다. 선사시대도 아니고, 거의 모든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시대 얘기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


올라가다 보면 ‘관악산 풍수’에 대한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이 또한 현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얘기들이다. 하긴, 그 당시에는 중차대한 일일 수도 있었겠다. “관악산은 경복궁의 조산(祖山) 또는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 산봉우리 모양이 불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광화문 양쪽에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산봉우리가 불 같아 보이진 않는다. 어딜 봐서! 더구나 설령 불 같아 보인다고 해서 그런 대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풍수가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불이 날 가능성은 있지 않나! 숭례문에 났던 화재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누군가 제정신 아닌 사람이 일부러 불을 낸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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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과 나무데크 계단을 숨 가프게 올라 갈림길에 왔다. 이정표를 보니, 연주암(戀主庵)까지는 150m, 연주대(戀主臺)까지는 500m다. 연주암으로 가면 좀더 많이 올라가야 해서 연주대로 바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목적지는 연주대니까.


연주대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들이 많은데, 어느 하나 정확하진 않은 것 같다. 이종묵(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쓴 글(<관악산 자하동의 인문경관과 자하신위> 인문논총 80권3호 2023.)에는 “연주대는 영주대 (靈珠臺)•염주대(念主臺)라고도 했는데, 조선후기에 연주대한 명칭이 일반화됐다.”고 나온다. 1707년 4월 관악산에 오른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관악산유람기(遊冠岳山記)>에는 “산에는 영주대가 있는데 실로 가장 높은 봉우리다(山有靈珠臺, 實最上峯也.)”란 구절이 있다. 한편 채제공 (蔡濟恭 1720~1799)이 쓴 <관악산유람기(遊冠岳山記)>에는 “대 이름을 연주대라 하고, 바위를 차일암이라 했다(臺曰戀主, 巖曰遮日.)”고 해서, 연주대란 명칭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8시57분, 연주대를 볼 수 있는 전망대 앞에 섰다. 그곳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연주대는 629m 높이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벼랑 위에 있다.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관악사(冠岳寺)을 창건하고 연주봉에 암자를 세웠는데 의상대(義湘臺)라 했지만, 지금은 연주대로 불린다. 연주대 축대 위에는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법당 내부에는 석가여래 삼존불상(釋迦如來 三尊佛像)이 있고, 암벽에는 인공감실을 마련한 마애약사여래입상(磨崖藥師如來立像)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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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정각, 정상에 도착했는데, 젊은 여자 둘이 사진을 찍다가 나도 찍어주겠다고 한다. 고맙다. 나도 그들을 찍어줬다. 그런데, 그 중 한 여자가, “얘가 오늘 생일이어서 기념으로 산에 왔어요.” 한다. 기특하다.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가방에 있는 에너지바와 약과를 몇 개 꺼내줬더니 고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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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뒤로 하고 응진전으로 갔다. 특별히 볼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한번씩 들르곤 한다. 응진전은 나한전 (羅漢殿)이라고도 하는데, 석가모니는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 (迦葉)을 협시(夾侍)로 모시고,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 (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 어떻게 모셔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응진전을 벗어나 다시 정상으로 올라왔는데, 좀전에 만났던 여자들이 아직도 있다. 그런데, 나무벤치에 햄버거를 하나 올려놓고 케첩으로 ‘30’이라고 써놨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여자는 이틀 후에 생일인데, 오늘 같이 축하할 거라면서 그 옆에 ’28’이라고 쓰인 햄버거를 하나 더 놨다. 그리고 초 대신에 감자튀김 끝에 케첩을 발라 불꽃으로 대신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한장 찍고 커피를 꺼내 줬더니 한모금씩 마시면서 좋아라 했다. 햄버거를 진열하는 동안 너무 추워서 그런지 얼기 시작한다. 그래서, 빨리 의식을 끝내고 연주암에 내려가서 먹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럴 생각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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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과 헤어져 하산하는데, 오늘은 새로운 길이다. 아니, 올라온 적은 있지만 이 길로 내려가는 건 처음이다. 사당역 방향이지만, 정상에서 곧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로 몇 번 올라왔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생소한 길이 이어졌다.


관악문을 지나 헬기장에 도착했는데, 오른쪽으로도 길이 나있다. 다녔던 길인지 헷갈린다. 더구나 그 길에는 가지 말라는 표시도 있다. 그런데 잠시 後 어떤 남자가 그 길로 올라왔다. 그래서 얼른 물어봤다. “이 길로도 사당역까지 갈 수 있나요?” 가능하단다. 접근금지 표시가 있긴 해도 상관 없단다. 처음 가보는 길이긴 해도 일단 내려가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사당역까지만 갈 수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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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려갈수록 생소하다. 처음 가는 길이 맞았다. 게다가 가파른 암릉길도 나왔다. 언젠가 인터넷을 보면서 관악산에 암릉길이 있다고 했는데, 이 길이었나 보다. 하지만, 더 문제는 이 길이 확실한 등산로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밧줄도 보이고 이정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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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바위를 지나 바우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가다 강아지바위란 안내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강아지’ 모양을 한 바위가 어느 건지 모르겠다. 좀전에 지나온 남근바위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는데. 긴가민가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더 내려와 삼거리까지 와서야, 지금 지나온 길이 파이프능선이란 걸 알았다. 파이프능선!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레이더기지나 연주대에서 사용하는 케이블을 감싼 파이프가 등산길 내내 이어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려올 때 무심히 지나쳤던 파이프가 그런 용도였구나!


사당역을 2.6km 남겨놓은 지점까지 내려오니 그제서야 등산로를 확실히 알겠다. 그러니까 지금까진 새로운 길로 내려왔던 거다. 역시 이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라고 한다.


국기봉을 지나 관음사(600m)와 사당역(1.3km)으로 갈라지는 곳까지 왔는데, 사당역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길이 관음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관음사길로 갔으면 좀더 쉽게 도착했을 텐데.


아무튼 11시35분, 관음사(觀音寺)에 도착했다.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진성여왕 9년(895) 도선국사 (道詵國師)가 창건한 비보사찰(裨補寺刹, 圖讖說과 불교신앙에 따라 전국 名處•名山에 세운 절)이다. 조선 숙종 42년(1716) 극락전을 개축했고, 1924년 요사채를 신축했다. 1977년 대웅전을 다시 짓고, 1980년대 범종각과 삼성각• 용왕각 등을 증•개축했다. 2007년 일주문 건립을 끝으로 불사를 마무리했다.”


관음사 경내로 들어가 대웅전 등을 사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이 흐려진다. 그리고는 이내 어두워졌다. 생각해보니,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외부에 노출해서 들고 다녔더니 배터리가 빨리 방전됐나 보다. 예전에 치악산 갔을 때도 이런 경우가 한번 있었는데, 미처 추위에 대처하질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촬영을 끝내고 서둘러 사당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차고 무사히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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