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522m), 남한산성 문화재 답사

by 이흥재

2026년 2월12일 목요일, 흐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오늘 일찍 일어나려고 엊저녁에 다른 날보다 일찍 자긴 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나는 건 힘들다. 그래도 어쩌나! 오늘은 산에 가기로 계획한 날이니 새벽밥 먹고 출발하는 수밖에!


오늘 가려는 남한산(南漢山)은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붙어있기 때문에 멀지 않다. 먼저 개롱역으로 가서 5호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 종점인 마천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조금 가면 송파상운 버스종점이 나오고, 다시 조그만 상가거리를 지난다. 하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나 문 연 가게는 없다.


위례대로(慰禮大路) 아래를 지나 왼쪽 성불사(㝭佛寺) 쪽으로 간다. 잠시 後 성불사 앞에 다다랐는데, 문은 열려있지만 주위가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혹시나 해서 챙겨온 헤드랜턴이 이럴 때 요긴하다. 하지만 방향을 잘 모르겠다. 대충 이쪽이다 싶은 방향으로 올라가보는 수밖에!


그래도 올라가다 보니 이정표가 보인다. ‘연주봉 옹성(連珠峰 甕城)’. 가려던 방향이 맞다. 아직은 어두운 산길을 계속 올라간다. 그러다 아침 7시가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밝아지고 10분쯤 더 지나 헤드랜턴을 꺼도 될 만큼 밝아졌다. 하지만 아직은 해가 뜨진 않았다.


7시21분, 연주봉 옹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뒤쪽으로 올라가봤다. 색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나무들이 많아 앞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높기 때문에 전망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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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을 따라 조금 가면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연주봉 옹성 암문을 만나는데, 그 앞에 옹성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 성벽을 더 둘러쌓은 시설물이다. 남한산성 본성에는 남쪽에 3개, 동북과 북쪽에 각 1개씩 5개 옹성이 있다. 이 옹성은 한강과 서울•하남•남양주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2001년 복원했다.”


암문(第五暗門)을 통해 성벽 안으로 들어간다. 남한산성에는 본성(本城)에 11개, 봉암성(峰巖城)에 4개, 한봉성(汗峰城)에 1개 등 16개 암문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우익문(右翼門)이 나오지만, 오늘은 성벽을 따라 가기로 계획했기 때문에 왼쪽 전승문(全勝門)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10분쯤 가다 북장대터(北將臺址)를 만난다. 안내문을 보면, “장대란 군사를 지휘하고 적을 쉽게 관측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로, 남한산성에는 5개 장대가 있었다. 북장대는 수어청 중영장(守禦廳 中營將)이 주둔했으며,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지어졌다, 18세기 초반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7시45분, 전승문(북문)에 도착했다. 안내문을 보니, “남한산성에는 4개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때 기습공격 했던 문이다. 하지만 ‘법화골 전투’에서 패했는데, 정조 3년(1779) 성문을 개축하면서 전승문이라 했다. 그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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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이다 보니, 오르막이 많다. 물론, 어딘가에선 내려가야겠지만, 우선 올라가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온통 계단이다. 게다가 딱딱한 돌계단이라 발도 많이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나! 목적지(남한산)는 정해져 있고, 갈 수 있는 길은 이 길뿐인 걸!


군포지(軍鋪址)를 자주 만난다.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건물인데, 남한산성에 125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8시 조금 지나 옥정사지(玉井寺址) 암문(第四暗門)을 지난다. 남한산성을 관리•수비하기 위해 북사사 (北四寺)와 남오사(南五寺)을 두어 승병들을 머물게 했다고 하는데, 그중에 옥정사(玉井寺)도 있었다. 아마도 여기가 그 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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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8시14분, 동장대터 암문(第三暗門)에 도착했다. 남한산성 암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홍예식(虹霓式)이다. 여기서 암문 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봉암성이다. 안내문을 보니, “남한산성을 본성과 봉암성•한봉성•신남성 등 외성, 그리고 5개 옹성으로 이뤄졌다. 이중 봉암성은 본성 동쪽 동장대(東將臺) 부근에서 북동쪽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해 쌓은 외성이다. 성 길이는 2,12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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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26분, 남한산 정상석에 도착했다. 안내문을 보면, 남한산성 보호를 위해 정상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정상석을 설치했다고 돼있다. 그래서인지 평지 비슷한 곳에 설치돼있다. 여기서 굳이 정상을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성벽보호를 위한다고 했는데, 그곳까지 가는 게 좋을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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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사진을 찍었으니, 하산이다. 이곳이 해발고도 500m가 넘지만, 산을 오른 기분은 별로 나지 않는다. 성벽을 따라 꽤 올라오긴 했어도 트레킹 한 기분이다. 하긴 ‘트레킹’의 정의도 조금 모호하긴 하지만!


올라왔던 길로 성곽을 따라 가다 동장대 암문 600m 지점에서 왼쪽 현절사 (顯節祠)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정표상 거리는 500m다. 게다가 내리막길이라 뛰듯이 내려간다. 그러다 조그만 계곡을 건너는데 얼음이 두껍게 깔려있다. 다른 곳에서는 못 보던 풍경이다. 이 골짜기가 더 추워서 그런가!


8시55분쯤 현절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출입문이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오래 전에 한번 들어가본 적 있지만, 지난해에도 이곳을 지날 때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보지 못했었다.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항복하길 거부하다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 등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순절 50년만인 숙종 14년(1688) 세워지고 5년 후에 ‘현절사’를 사액(賜額)했다. 이곳에는 숙종 25년(1699) 주전파(主戰派) 김상헌 (金尙憲)과 정온(鄭蘊)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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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조정은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가 대립했었다. 그러다 결국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고, 주전파 대신들을 청나라로 끌고 갔는데, 앞의 삼학사는 끝까지 저항하다 참형 당했다. 물론, 그들의 충절이 가상하긴 해도 힘 없이 말로만 다투는 건 아무래도 부질없다. 탁상에서 명분싸움만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오랜만에 연무관(演武館)에 들러본다.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처음엔 연무당(鍊武堂)이었지만, 숙종 때 수어사 김좌명(守禦使 金佐明)이 수리하면서 연병관(鍊兵館)이라 했다. 이후 정조 3년(1779) 수어영 (守禦營)으로 했지만, 연병관•연무관으로 불렸다. 정면 네 기둥에 주련 (柱聯)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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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壘金城萬仞山 만 길 높은 산에 옥처럼 단단한 보루와 철벽 같은 성
風雲龍虎生奇力 바람과 구름, 용과 호랑이 같은 기이한 힘을 발한다.
角羽宮商動界林 각우궁상 음악소리 계림에 진동하고,
密傳蔥本空三本 은밀히 파뿌리 전하자 삼본이 텅 비었네.


여기서 ‘각우궁상’은 동양음악 오음(宮商角徵羽)을 사자성어로 쓴 것이고, ‘삼본’은 예(禮)의 3가지 근본인 천지(天地)•조상(祖上)•군사(君師)를 말한다.


이번에는 행궁(行宮)으로 가본다.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무는 별궁이다. 정문인 한남루(漢南樓) 쪽으로 가면서 매표소를 보니, 10시가 오픈시간이다. 하긴 어차피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한남루는 정조 22년(1798) 광주유수 홍억(廣州留守 洪檍)이 세운 누각으로, 이로써 행궁의 삼문 (三門)을 완성했다. 한남루는 한강 남쪽에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누문이란의미며, 이곳에도 주련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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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一城講龍虎韜 한 성을 지킴에 용호의 도략을 익히고
鎭百里閱豼貅士 백리를 지키는 비휴 같은 용사를 본다.
良刺史宣上恩德 훌륭한 관리는 임금의 은덕을 널리 퍼뜨리고
大將軍御下威信 대장군은 부하를 위엄과 신의로 다스린다.


‘도략(韜略)’은 군사를 지휘해 전쟁하는 방법이고, ‘비휴’는 범•곰과 비슷한 고대 전설상의 동물로, 용맹한 군대에 비유된다.


행궁에서 나오다 침괘정(枕戈亭)도 둘러본다. ‘창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건물인데, 축조시기나 용도도 명확치 않고, 왜 ‘침괘정’이라고 부르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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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향해 국청사(國淸寺) 쪽으로 올라가다 숭렬전(崇烈殿)까지 가본다. 가는 길에서 200m 거리에 있다고 했는데, 오르는 길이 꽤 가파르다. 하지만 이왕 가려던 길이니 끝까지 가는 수밖에! 홍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지만 역시 문은 닫혀있다.


역시 이곳에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숭렬전은 백제시조 온조왕 (溫祚王)과 산성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李曙 1580~1637)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인조 16년(1638) 온조왕사(溫祚王祠)로 지어졌으며, 정조 19년(1795) 숭렬전으로 사액(賜額) 됐다. 이서 장군을 모신 이유는, 인조의 꿈에 나타나 청병의 기습을 알려준 온조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자, 다시 꿈에 나타나 충직한 신하 한 명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이서 장군이 병사했다. 인조는 온조왕이 이서를 데려갔다고 생각해 함께 사당에 모셨다. 이서는 영의정으로 추증 됐고, 시호는 충정공(忠定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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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청사로 간다. 아스팔트 포장길이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그래도 마지막 힘을 내본다. 국청사 일주문 앞에 안내문에 세워져 있다. “인조 2년 (1624) 벽암 각성대사(碧巖 覺性大師)의 의해 창건됐다. 그는 팔도도총섭 (八道都摠攝)으로 임명 받은 後 전국에서 의승군(義僧軍)을 모아 남한산성을 축성(築城)했다. 기존 망월사•옥정사 외에 7개 사찰(천주사• 남단사•한흥사•장경사•동림사)을 창건하여, 본부사찰(개원사)과 8도 사찰로 배치했고, 그중 강원도 사찰이 국청사다. 일제 때 방화소진 됐던 것을 1988년 대웅전 중건으로 불사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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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산행도 마무리 단계다. 조금 만 올라가 서문(右翼門)을 지나면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남한산성의 문화재답사 하이라이트는 수어장대(守禦將臺)지만, 오늘은 남한산 오르기가 주목적이었으니 다음 기회로 마루기로 한다. 서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전망대까지 다시 올라가 미세먼지로 뿌연 잠실 쪽을 잠시 바라보다 본격적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나무데크 계단으로 계곡을 내려와 산할아버지를 한번 보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3416번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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