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26일 목요일 맑음
오늘도 2주 만의 산행이다. 목적지는 도봉산(道峯山). 도봉산의 유명한 봉우리로는 자운봉(紫雲峰 739.5m)과 만장봉(萬丈峰 718m)선인봉(仙人峰 708m) 등이 꼽히지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는 신선대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도 물론 신선대다.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탄 後 도봉산역에 내렸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그 틈에 나도 산엘 가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도봉로를 건너 도봉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도봉산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광륜사(光輪寺)에 이르는데, 그 사이 ‘道峰洞門’이라고 쓰인 바위를 잠시 둘러본다.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에 따르면, “대노(大老) 존칭을 받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쓴 글씨로, 한학을 연구하는 후학들의 이정표다. 학문중심이었던 도봉서원 (道峰書院) 전당에 들어섬을 알려주는 석각이다.”
광륜사에도 잠시 들어가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애매해서인지 예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사찰 입구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광륜사는 신라 때(673) 의상조사(義湘祖師 625~702)가 만장사(萬丈寺)로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던 것을 조선후기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 추존왕 익종의 왕비로 헌종의 어머니며 고종의 양모다)가 중창한 後, 흥선대원군이 자주 방문했다. 2002년 광륜사로 개창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을 다니다 보면 대부분 신라고승인 원효와 의상의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의상이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신라왕족 출신이라고 하니 경주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왔다고는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사찰을 창건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의상이 창건했다는 사찰이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아마도 그의 이름을 빌렸을 가능성이 크다. 자료를 찾아보면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등 많은 책을 썼고, 표훈(表訓) 등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상의 이름을 빌려 사찰을 창건해 그 존재감을 키웠지 않았을까 싶다.
유럽에도 이런 예가 있다. 야고보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칼릭스티누스 서책(Codex Calixtinus)은 프랑스 신부인 에메릭 피코(Aymeric Picaud)가 1138~1145년 사이 정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책 제목에 있는 칼릭스티누스 교황(Pope Callixtus II)은 1124년 이미 죽고 없었다. 그러니까 책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아무런 상관 없는 교황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다.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녹야선원(鹿野禪院)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해 가다 김수영 시비(金洙暎 詩碑)를 만난다. 거기에는 유작(遺作)이었던, “풀이 눕는다”로 시작되는 <풀> 일부가 새겨져 있다. 그 시는 시인이 죽던 해인 1968년 <창작과 비평>에 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큰 관심은 없다.
시비를 지나면 아직도 빈터로 남아있는 도봉서원터가 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도봉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년(선조6) 양주목사(楊州牧使)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 (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고 이듬해 ‘도봉(道峰)’이란 사액(賜額)을 받았다. 1696년(숙종22) 송시열을 추가 배향했지만,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 훼철됐다 1971년 복원됐다. 2011년 서원복원을 위해 철거하다, 2017년 고려초기 고승 혜거국사 홍소(慧炬國師 弘炤 899~974)의 비석파편이 발견됐고, 비문내용 중 영국사(寧國寺)란 명문이 판독됐다. 현재 도봉구는 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이 안내문은 2021년 6월 설치됐는데, 이곳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빈터로 방치돼있다.
서원터 맞은편 계곡에는 ‘高山仰止’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는 <시경 (詩經)> [소아(小雅)] 차할(車舝) 편에 나오는 문구로, 전체 내용은 이렇다.
高山仰止 景行行止 높은 산은 우러러보고 한길은 가야하는 것
四牡騑騑 六轡如琴 쏜 살 같은 네 필 숫말 여섯 고삐 가지런해
覯爾新昏 以慰我心 시집온 당신을 이렇게 보니 내 마음이 저으기 흐믓하오.
다시 만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이정표에는 자운봉까지 2.1km라고 돼있지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거리를 달라질 것이다. 다만, 그보다 앞에 있는 도봉대피소까지 0.8km는 변함없을 거다. 조금씩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아직은 가파르진 않다. 그리고 10분이 채 되지 않아 도봉대피소 밑을 지나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대피서에서 5분쯤 올라가다 ‘인절미바위’를 만난다.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에 따르면, “이 바위는 화강암의 일종으로, 한낮의 햇볕으로 팽창되고 밤에 냉각으로 수축되면서 박리작용(剝離作用)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석굴암(石窟庵)과 만월암(滿月庵)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늘은 만월암 쪽으로 올라갔다 석굴암 방향으로 내려올 예정이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돌계단과 나무데크 계단을 한참 동안 올라 오전 8시37분, 만월암에 도착했다. 암자 앞에는 여느 때처럼 따뜻한 차를 끓여놓은 물통이 있고, 그 옆에는 1회용 컵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나무벤치까지 있어 차를 한잔 따라 벤치에 앉아 한모금 마셨다. 조금 뜨겁긴 해도 조금씩 식히면서 마시니 맛도 괜찮다.
안내문은 보니, 만월보전(滿月寶殿)이란 석굴 안 법당에 1.5m 높이의 석불좌상(石佛座像)이 모셔져 있다는데, 법당 문이 닫혀있어서 볼 순 없다. 암자 옆에 있는 다른 안내문을 보니, “만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 (義湘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또 의상이다. 이렇게 조그만 암자까지 의상이 창건했다니). 2002년 법당과 여사로 사용하는 만월보전을, 2004년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포대능선까지 400m란 이정표를 만났는데, 거기부터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포대능선’은 능선 중간에 대포진지인 포대 (砲隊)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배낭걸이대’에 도착하니 자운봉까지 500m란 이정표가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전 9시10분, 포대정상에 오르니 만장봉과 소장봉자운봉신선대가 나란히 보이지만, 선인봉은 만장봉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소장봉 (710m)은 좀 생소하다. 안내문을 보니, “선인봉은 신선이 도를 닦는 바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만장봉은 높디 높은 산봉우리란 뜻으로, 날카로운 형상을 한 기암(奇巖)이다. 자운봉은 높은 산봉우리에 붉은 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여기에도 신선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평일인데도 산에 오른 사람들이 꽤 있다.
이제 신선대로 가야 하는데 길이 두 갈래다. 직진해서 Y계곡을 따라 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가는 길도 있다. 더러는 Y계곡 올라가는 게 무서워 돌아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다들 Y계곡으로 향하길래 나도 따라갔다. 그런데 이곳은 내려가는 것조차 너무 가파르다. 쇠파이프로 가이드레일을 만들어놨지만 바닥이 온통 바위라 조금만 방심해도 자칫 미끄러질 수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발한발 내려간다. 그리고, 이내 숨을 헐떡이며 다시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 중간쯤에서 여자를 만났다. 어디로 가느냐니까 내려오고 있었는데, 다시 올라가야 하겠단다. 내가 생각해도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할 것 같다. 차라리 되돌아 올라갔다 우회로로 가는 게 낫겠다.
Y계곡을 올라 조금 더 가니 신선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옆으로는 자운봉도 잘 보이지만, 오늘은 해가 맞은편에 있어 역광이라 사진 찍기에 좋지 않다. 다시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신선대로 가는 바위로 접어든다. 여기도 쇠파이프 가이드레일이 설치돼있다. 게다가 Y계곡보다는 오르기가 좀더 수월하다.
신선대 정상목(頂上木)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자가 올라오길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도 찍어주겠다니까 안 찍는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아마도 사진 찍히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하산길에 첫번째 쉼터에서 커피와 간식을 먹었다. 조금 더 내려오다 갈림길을 만났는데, 왼쪽 석굴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직진해서 마당바위로 가면 도봉탐방지원센터가 100m쯤 더 가깝긴 한데, 오랜만에 석굴암 쪽으로 가보기로 했기 때문에 좀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정작, 석굴암에 가보지 못했다. 등산로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천룡도(天龍圖)란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천룡은 팔부중(八部衆 여덟 神將)을 일컫는데, 이들을 통솔하는 위태천(韋馱天)과 함께 그린 불화가 천룡도다. 또한 이곳에 세워놓은 안내문에 따르면, 석굴암은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천축사(天竺寺)만월암과 함께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의상대사님, 참 부지런도 하셨다.
석굴암 갈림길과 인절미바위를 다시 지나 지름길을 따라 한국등산학교를 겸하고 있는 도봉대피소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등산로가 있긴 했지만 내부가 궁금해서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더니, 계단을 내려가 다른 쪽 입구가 나오는데 거기에 주인이 앉아있다 의아해 한다. 궁금해서 지나는 길이라고 했더니 수긍하는 눈치다.
광륜사와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도봉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