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숨은벽 코스

by 이흥재

2026년 3월12일 목요일 맑음


지난주에는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 산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명성산(鳴聲山 923m)엘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기에도 조금 먼 것 같아 망설이다가, 연초에 짜놓은 계획대로 북한산 숨은벽 코스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전에도 한두 번 다녀온 곳이라 낯설지는 않다.


‘숨은벽’은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북면 쪽 암벽을 말하는데, 1969년 <월간산> 초대편집장(최선웅)을 비롯한 등반연구회 회원들이 암벽등반 루트를 개척하고 ‘숨은벽’이라 했으며, 숨은벽 아래로 뻗은 지능선은 자연스레 ‘숨은벽능선’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상 높이는 북한산에서 백운대(白雲臺 836m)•인수봉(仁壽峯 811m)•만경대(萬景臺 800m)에 이어 네번째(768m)로 높다고 하는데, 어차피 그 정상을 오를 건 아니어서 관심은 없다.


숨은벽 코스로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오금역으로 가서 3호선으로 갈아탄 後 구파발역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효자2통’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한다. 새벽 5시15분에 일어나 서둘러 아침을 먹고 곧바로 개롱역으로 갔는데, 전철이 막 출발하고 있었다. 하는 수밖에 10분 넘게 다시 기다려야만 했다.


한참 기다렸다 전철을 타고 오금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 後 졸면서 구파발역까지 가서 밖으로 나왔는데, 내가 타야 할 704번 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없다. 또 다시 한참 기다렸다가 먼저 오는 ‘양주37’번 버스를 타고 효자2통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네이버지도 앱을 열었더니 진행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걷다 보니 ‘국사당’ 입구가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국사당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국사당(國師堂)은 매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사당(<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목멱신사[木覓神祠]를 지었다고 한다)을 말하는데, 본래는 남산(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이 됐으며, 국가민족문화유산 (1973)으로 지정돼있다. 그러니 이곳의 국사당은 이름만 그럴 듯하게 붙인 것 같다.


아무튼,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먼저 왼쪽으로 난 산길로 가다 목재다리로 계곡을 건너고 다시 돌계단을 따라 산을 오른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아직도 잔설이 많다. 그리고 등산로에도 녹지 않은 눈이 얼음으로 변해있어 조심스럽게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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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벽을 왼쪽에 두고 아주 좁은 틈을 비집고 간신히 지나 가파른 길을 내려가 본격적인 오르막을 만났는데, 여기는 눈이 아주 많다. 앞서 가던 사람 중에 한 명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고, 다른 둘은 아이젠을 미처 준비하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다. 나도 배낭에 아이젠을 챙겨가긴 했지만 이 정도는 그냥 올라가도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한발씩 오른다. 그런데, 미끄러운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경사가 너무 가팔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자주 쉬면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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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쯤 눈길 오르막을 올라 조금 내려가나 했더니 또 다시 오르막이다. 하긴 산에는 어차피 오르막의 연속 아닌가!


10시16분, 정상에 도착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거의 없다. 그래도 다행히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있다. 먼저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찍어달라고 하니 아주 많이 찍어줬다. 자기는 사진을 잘 찍을 줄 몰라 여러 장을 찍은 거라고 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대부분 잘 찍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커플이 와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여자가 너무 무서워한다. 분명히 가드레일이 있지만 그래도 밑이 낭떠러지여서 그런가 보다. 여자가 먼저 남자사진을 찍어주려고 했던 거였지만, 내가 커플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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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잠시 머물다 바로 밑에 있는 마당바위로 내려와 초코파이와 커피를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났다. 전에는 고양이들을 자주 봤었는데 강아지를 보긴 처음이다. 혹시 누군가 데려왔을 수도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먹고 있으니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야생동물에게 먹을 걸 마음대로 주지 말라고 한 걸 본 것 같아서 하나도 주진 않았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오니 강아지가 그기로 갔는데, 그 사람은 물 밖에 없다면서 미안해했다. 내가 조금 줘야 했던 건가?


산을 내려오다 ‘삼각산(三角山)’ 안내문을 다시 본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만경봉(萬景峰)으로 구성돼있다. 고려 수도인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 뿔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곳을 정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성에서 이곳이 보였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같은 서울에 있는 불암산에서 보면, 작게나마 삼각뿔 모양이 보이긴 하지만 개성에서 그렇게 보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온조와 비류가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곳을 정했다”는 것은 ‘전설’이 아니라, <삼국사기> 기록에 나온다. 즉, 백제본기 온조왕(溫祚王) 조에 보면, “드디어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곳을 바라봤다(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고 돼있다.


안내문 밑에는 ‘백운봉’에 대한 시 몇 편이 소개돼있는데, 그중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에 실려있는 태조의 <백운봉에 올라(登白雲峯)> 원문은 이렇다. 이 시는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지 전, 고려 무장(武將)으로 활약할 때 백운대에 올라 지은 것이라고 한다.


引手攀蘿上碧峯 손 당겨 댕댕이 덩굴 휘어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 암자 하나 흰 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구나.
若將眼界爲吾土 만약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초나라와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받아들이지 않으리.


정상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을 지난다. 이 암문은 1711년(숙종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는 위문(衛門)으로 불렸다고 한다.


나무데크 계단을 내려가 대동사(大東寺) 방향인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25분만에 대동사 입구에 도착했지만, 올라가보진 않았다. 경기도에서 펴낸 <북한산 조사연구 자료집>에 따르면, 대동사는 1970년 창건됐다고 한다. 이정표는 보니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아직 2.5km 더 내려가야 한다(백운대까지는 1.6km).


계속 내려와 보리사를 지나고 새마을교(2016년 10월11일 준공)을 건넜다. 이정표를 보니 계곡탐방로가 400m쯤 더 짧지만 포장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간다. 포장도로라 편하기도 하고, 이곳에 볼거리가 더 많다. 조금 가니 ‘아마타사 500m’ 이정표가 보인다. 이 사찰은 1966년 창건 당시는 덕암사 (德岩寺)였는데, 2020년 무렵 아미타사(阿彌陀寺)로 사명(寺名)을 바꿨다고 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의 주인인 부처로, 무량수불 (無量壽佛)•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찾아가 볼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내려간다.


이번에는 무량사(無量寺)를 지난다. 고종(高宗)의 후궁인 순빈엄씨 (淳嬪嚴氏)가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를 모신 後 백일기도를 올려 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을 낳았다고 한다. 약사불은 질병•치료•수명연장•재앙소멸 등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며, 산신탱화는 비단이나 종이에 산신모습을 그려 벽에 걸어놓은 그림이다. 이후 순빈의 원당(願堂)인 약사암(藥師庵)으로 불리다가, 1980년 무량사로 바꿨다고 한다.


돌로 만든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1997년 7월20일 세움)을 지나 대서문 (大西門)에 도착했다. 안내문으로 보니, “북한산성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있다. 1712년(숙종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지금 문루는 1958년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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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고 북한산로를 건너 양주37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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