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5일 목요일 흐림
지난주에 이어 한양도성 순성길을 완주하는 날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완주하려면 지난주에 이어 숭례문(崇禮門)에서부터 걸어야 하지만, 숭례문과 돈의문터 사이에는 인증사진 장소나 스탬프 받는 곳이 없기 때문에 건너 뛰고 돈의문에서부터 제2일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지하철 서대문역까지는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한번에 갈 수 있다. 서울에서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아차산이나 남한산 갈 때 뿐인데, 번거롭지 않아 다행이다. 서대문역 4번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은 해도 뜨기 전이다. 그래도 출근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첫 여정은 서울 경교장(京橋莊) 앞에서 스탬프를 받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맞은편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받았는데,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업무가 중단된 상태여서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박원순(朴元淳 1955~2020)이 서울시장이던 2017년, ‘새문안마을’ 재개발 때 기부채납 받은 9100m2 부지에 330억원을 들여 조성했는데, 이듬해부터 ‘유령마을’ 취급을 받았다(경향신문, 2018.4.21 “300억 들인 돈의박물관마을, ‘유령마을’된 사연”). 오세훈(吳世勳 1961~)이 2021년부터 서울시장이 되면서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 2024년 7월, 경희궁지와 주변의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시민대학서울시교육청 돈의문박물관마을 등 4개 공공부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이 수립해 2035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철거를 위해 비워둔 상태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을 지나 월암근린공원(月岩近隣公園)으로 가서 홍난파 가옥을 잠시 구경한다. 이곳은 송월동(松月洞)인데, 송정동(松亭洞)과 월암동(月岩洞)이 합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송정동은 개천변에 흰 소나무가 정자(亭子)처럼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월암동에는 보름달처럼 둥근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월암’은 이곳의 옛 지명인 것이다.
홍난파가옥은 1930년 독일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건물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홍난파(蘭坡 洪永厚 1898~1941)가 1935년 인수해 6년간 살았던 집이다. 이 집은 2004년 서울시가 구입해 2006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 문화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계단을 올라 ‘베델 집터’를 지난다. 이곳도 월암근린공원의 일부도, 홍난파가 작곡한 <봉숭아>(김형준 작사)와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노래가 스테인리스스틸 판에 새겨져 전시되고 있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은 1904년 조선에 온 영국인으로 한국명은 배설 (裵說)인데, 1904년 7월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해 항일 언론활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지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날씨가 매우 흐리다. 주위는 물론 서울주변이 온통 희뿌옇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원인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요즘 들어 기온이 가장 높은 날이어서 그런지, 장갑과 귀마개를 모두 벗고 등산해야 할 정도다.
옷을 좀 두껍게 입은 탓도 있지만, 산을 오르려니 땀이 많이 난다. 속은 거의 젖은 듯하다. 오전 8시 조금 지나 인왕산(仁王山仁旺山 338.2m)에 올라왔는데, 아무도 없다. 여기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셀프로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사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완주인증서’에 첨부한 後 곧바로 삭제해버렸다.
이제 산을 내려가 창의문(彰義門)으로 향한다. 이정표상 거리는 1.8km. 그리고 8시17분,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란 이름이 붙은 연리지(連理枝)에 도착해 사진 몇 장 찍고는 계속 내려간다.
성벽보수 이력이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지난다. 내용은 “순조 6년 (1806) 11월 최일성이 공사를 돌봤고, 이동한이 감독했으며, 전문석수 용성휘가 참여해 성벽을 보수했다(嘉慶十一年 丙寅十月日 看役 崔日成 監官 李東翰 邊首 龍聖輝).” 공사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공사책임제다.
서시정(序詩亭)과 윤동주문학관(尹東柱文學館)을 지나 창의문으로 향한다. 문학관은, 청운아파트 부지를 공원화(청운공원) 하면서 폐기됐던 상수도 가압장(加壓場)을 리모델링 해서 2012년 7월 개관한 것으로 종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시설이다. 윤동주(1917~1945)가 연희전문 재학시절인 1941년 5월, 종로구에 거처했던 인연으로 이곳에 문학관을 건립하게 됐다고 한다.
오전 8시37분, 창의문에 도착했다.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면,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17)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문 부근 경치가 개경(開京)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 해서 자하문(紫霞門)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창의문 바로 옆에 있는 안내문 내용은 조금 다르다. “서울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뒀는데, 창의문은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북소문’이라 불리진 않고 ‘자하문’이란 별칭으로 불려왔다. 태종13년(1413)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창의문과 숙정문(肅靖門)은 경복궁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地脈)을 상하게 해선 안된다’고 건의해,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 그러다 영조 17년(1741) 이곳을 수축할 때 훈련대장 구성임(具星任)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 때 의군(義軍)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해서 문루를 세웠다.”
한편, 창의문 앞에는 서울 한양도성이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안내문도 있다. 토목문화유산은 대한토목학회가 2023년부터 매년 토목의 날(3월30일, 한양도성 축조일)에 지정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소양강 다목적댐과 경부고속도로(2023), 인천항 갑문과 서울지하철 1호선 (2024), 서울 한양도성(2025) 등이 지정돼있다.
‘자북정도(紫北正道)’를 지나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백악산 (白岳山)으로 향한다. 중간에 ‘돌고래쉼터’는 공사 중이고, ‘백악쉼터’도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9시7분 백악산(342m)에 올랐다. 마침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젊은이 둘이 있길래 인증사진을 부탁했다. 백악산은 북악산 (北岳山)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백악’은 모양 따라, ‘북악’은 방위 따라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121사태 소나무’를 지나 청운대(靑雲臺)로 내려간다. 이 소나무는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내려왔을 때 경찰과 교전하면서 총탄흔적이 남아있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1968.4.1) 됐다.
오전 9시15분, 청운대(293m)에 도착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어 정상석 사진만 몇 장 찍고 숙정문으로 향한다. 안내문을 보면, “북악산 전면개방을 기념해 서울 진산인 북쪽 최정상 백운대(836m)를 본떠 청운대란 이름을 붙였다. 경복궁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라고 돼있는데, 정면에 소나무가 많아 경복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촛대바위와 철종 2년(1851) 9월 성벽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담긴 각자성석을 지나 9시32분, 숙정문에 도착해 마지막 스탬프를 받았다. 이로써 인증사진과 스탬프를 다 받았다. 즉 한양도성을 완주한 셈이 됐다.
숙정문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면, “숙정문은 한양도성 북쪽 대문이다. 처음엔 숙청문(肅淸門)이었다. 현존하는 도성문 중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며,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성을 처음 쌓을 때인 태조 5년 (1396)부터 숙청문이라고 했다가, 중종 18년(1523) 처음 ‘숙정문’이라고 했는데, 이후에도 ‘숙청문’이란 표현은 중종 32년(1537), 선조 9년(1576) 26년(1593), 숙종 29년(1703) 등 몇 번 더 보인다. 그러니까 숙청문을 왜 숙정문으로 바꿨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무튼,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肅靖門’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숙정문은 지어진 後 풍수적으로 경복궁 지맥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깊은 산속 음방(陰方)에 있어서 도성내 아녀자들의 풍속을 음락하게 한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적으로 특별히 이용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선왕조 내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말바위안내소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이 안내소는 2007년 4월, 와룡공원~숙정문 구간 등 백악구간을 전면 개방하면서 만들어졌다가 2023년12월부터 운영이 종료돼 빈 시설로 남아있다. 다행히 주위에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와룡공원(臥龍公園)을 지나 오늘 최종 목적지인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로 향한다. ‘와룡’은 용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0시25분, 안내센터에 도착해서 완주인증서를 받았다. 좀전 말바위안내소에서 인증서 신청을 해놨었기 때문에 곧바로 발급받을 수 있었다. 올해 673번째였다. 아직 2월초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일주했나 보다.
그리고 메탈배지도 받았다. 매분기 한번씩 1년에 네 번 완주해야 받을 수 있는 배지다. 그러니까 아무 때나 4번 완주해도 안되고 반드시 분기별로 한번씩 완주해야 해서 꽤 까다로운 조건이다. 이제 당분간 한양도성 순성길 걷기는 좀 쉬어야겠다.
안내센터를 나와 혜화문(惠化門)을 지나 한성대입구역으로 갓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