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종주 제1일, 족두리봉~ 대남문

by 이흥재

2026년 4월2일 목요일 맑음


연초에, 올해 산행일정을 계획해놓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주엔 불암산을 가려고 했었는데 산행하지 못했고, 이번주엔 사패산엘 가려고 계획했었지만 갑자기 북한산종주로 마음을 바꿨다. 어차피 혼자 결정해서 실행하는 것이니, 어떤들 큰 상관은 없다.


북한산 종주코스는 여럿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불광역에서 출발해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백운대~ 백운대탐방지원센터~ 북한산우이역 코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거리가 16km 가량 되기 때문에 하루에 걷기엔 조금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오늘은 대남문까지만 가기로 했다.


새벽 5시 반에 알람 진동소리를 듣고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개롱역으로 나가 5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 가서 오금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 後 불광역까지 갔다. 그리고 불광역에서 9번 출구로 나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들머리는 ‘대호아파트’ 옆에 있었다. 그런데 방향을 잘 모르겠다. 정확한 목적지를 모르니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서 네이버지도 앱을 켜고 찾아가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골목 끝에 숨어있어서 찾는 게 쉽진 않았다. 3년전에도 불광역에서 북한산종주를 시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이 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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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는데 앞서 가는 등산객이 몇몇 보인다. 불광역에서 650m 떨어진 곳에 세워놓은 이정표에는 ‘서울둘레길’이라고 했는데, 이곳을 지나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산길 옆으로 진달래들이 많이 피어있다. 조금 가다 보니 조금 거친 산길과 그 옆에 나무데크 계단이 있는데, 옆에서 쉬고 있던 중년남녀가 어디 갈 거냐고 묻는다. 족두리봉으로 간다니까, 계단으로 가지 말고 왼쪽 산길로 가라고 한다. 여기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아마도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서울둘레길’로 이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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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가파른 암릉인 릿지(Ridge)로 이어진다. 이런 곳에서는 등산화가 아니면 마찰력이 약해 쉽게 미끄러질 것 같다. 앞서 오르는 사람도 사족보행 (四足步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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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34분, 첫 봉우리인 족두리봉(해발370m)에 도착했다. 예전엔 수리봉 (鷲峰)이라고 불렀다는데, 멀리서 보면 족두리 같다고 하여 최근에는 족두리봉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봉우리를 지나쳐 향로봉 방향으로 되돌아 보면 언뜻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좀 억지스럽긴 하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향로봉까지는 1.7km, 비봉까지는 2.3km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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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도착한 향로봉(香爐峰 535m)은, 탕춘대성(蕩春臺城) 방향에서 바라봐야 향로모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나가며 봐서는 전혀 향로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 봉우리는 향림사 뒤에 있어서 향림사 후봉 (香林寺 後峰) 또는 향림봉(香林峰)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성능(聖能) 스님이 쓴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향림사는 비봉 남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됐다(香林寺, 在碑峰南, 今廢.)”고 한다.


향로봉에서 600m쯤 가면 비봉(碑峰 560m)이 나온다. 진흥왕순수비 (眞興王巡狩碑)가 발견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비석은 무학대사 (武學大師)의 왕심비(枉尋碑) 또는 글자가 없는 몰자비(沒字碑)로 알려져 오다, 19세기초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추사’는 號가 아닌 字다) 승가사(僧伽寺)에 들렀다가 비봉을 찾아와 비면(碑面)을 판독함으로써 진흥왕순수비임이 알려졌다.


이 비석은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비를 이전했다는 모조비 (模造碑)를 세워놓았다가, 2006년 모조비를 철거하고 복제비(複製碑)를 새로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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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내용은 “진흥태왕 및 중신들이 ™™을 순수할 때의 기록이다 (眞興太王及衆臣等巡狩™™之時記)”로 시작되며, 진흥왕의 행차사실과 진흥왕을 보좌한 대신들 이름과 직책을 열거했다. 또한 새로 신라로 편입한 백성들을 교화하는 기록도 있다.


한편, ‘왕심(枉尋)’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무학이 삼각산(三角山)에 올라 용세(龍勢)를 살피다, 목멱산 (木覓山)을 왕도(王都) 자리로 정하고 길 옆에서 쉬고 있었는데, 노옹 (老翁)이 소를 타고 가다 채찍질 하며 꾸짖길, “어리석기가 무학 같도다. 정처(正處)를 버리고 딴 곳에서 왕심(枉尋 잘못 찾는다는 뜻)하는 도다.” 했다. 무학이 가르침을 청하니 노인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10리를 가라 하여 백악산(白岳山) 아래 도읍 터를 정했다고 한다.


복제비를 보러 올라가는 길은 아슬아슬하다. 바위에 약간의 홈은 있지만 자칫 미끄러지기라고 하면 바로 낭떠러지다. 전에 한번은 약간 추운 날이었는데 혹시 조금이라도 얼어있을 까봐 올라가는 걸 포기한 적도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날씨도 화창하고 바위도 말라있어서 그럴 위험은 없었지만, 조금 겁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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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에서 500m 더 가면 사모(紗帽)바위가 있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인 사모를 닮아서다. 오전 10시14분, 승가봉 (僧伽峰 567m)을 지나는데, 곧바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문수봉엘 가려면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내리막을 만나면 좋지 않다. 암튼, 승가봉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 수태(秀台)스님이 창건된 승가사(僧伽寺)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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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은 어려운 길, 왼쪽은 쉬운 길이란 이정표가 있는데 모두 400m 거리다. 앞선 사람을 따라간 건 아니지만, 어려운 길을 택해서 올라간다. 이름은 붙여져 있지 않지만, 이곳이 딱 ‘깔딱고개’다. 그리고 아무리 올라가도 문수봉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정상에는 정상목이 세워져 있었는데.


바위에 세워놓은 쇠파이프 가드레일에 의지해 올라갔더니 앞에 봉우리가 보인다. 저건가? 하면서 다가가보니 그 또한 문수봉이 아니다. 그러다 10시55분, 드디어 문수봉(文殊峰 727m) 정상목을 만났다. 문수봉 이름은 봉우리 아래 있는, 고려 예종 때 탄연(坦然)이 세운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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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을 내려와 대남문(大南門)을 지난다. 이 성문은 북한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 지어져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렸었다. 성문 위에 있는 단층 문루는 1991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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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에 문수사에 잠시 들렀다. 연혁(沿革)을 보니, 고려 예종(睿宗) 4년(1109) 대감탄연국사(大鑑坦然國師)가 개산(開山)했다고 하며, 문수굴로 명명된 천연동굴이 있는데, 굴법당(窟法堂)으로 장엄(莊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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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를 보니, 문수사에서 북한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구기분소까지 2.4km인데, 내려오는 내내 길이 낯설다. 몇 년전에 이 길을 따라 올라간 적도 있는데, 왜 처음 걷는 길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구기계곡삼거리를 지나 내려오는 길에 계곡을 건너는 여러 나무다리를 만나는데, 그중에 ‘귀룽교’가 있다. 이름이 특이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귀룽은 장미과의 ‘낙엽 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로, 줄기껍질이 거북(龜) 등 같고 줄기와 가지가 용틀림(九龍)하는 것 같아 구룡(龜龍)나무며, 꽃 핀 모습이 구름 같아 ‘구름나무’라고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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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오도청 버스정류장에서 7212번 버스를 타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려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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