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 Dec 21. 2017

1. 한 달 살기를 준비하다

짐은 미니멀리스트처럼

2017년 9월 28일, 나는 40일 동안 부다페스트로 떠났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기업가로 살기로 결심한 후 스티커와 이모티콘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가 재충전이 필요했고 9년 전 다녀온 유럽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늘 꿈꿔왔던 여행 그림책을 내보자고 결심하고 어디에 갈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서유럽 국가는 대부분 가보았기에 가보지 않은 곳을 살펴보았고 재정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여 물가가 저렴한 동유럽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야경이 멋지기로 유명한 부다페스트로 최종 결정한 것은 그래도 정보가 많다는 점과 나와 같은 디지털 노매드들이 모이는 도시라는 점 때문이었다. 디지털 노매드란 회사를 다니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전 세계 카페를 가면 주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한국이 아니어도 일을 할 수 있기에 여행과 삶이 합쳐진 ‘한 달 살기’를 결정하게 되었다. 


머무는 여행이 좋다

유럽여행 정보를 묻고 답하는 커뮤니티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 있다. '부다페스트 볼 것 많나요?’라는 질문에 “다 둘러보는데 2일이면 충분합니다. 4일은 너무 긴듯하네요” 이런 식의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도 처음 유럽여행을 갈 때는 너무 가고 싶은 곳이 많아 한 도시에 2~5일 정도를 배정했고 주요 관광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으면 다 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느끼는 건 알려진 곳을 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곳 중에 예쁜 곳이 참 많다는 것과 이를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이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애초에 여행지에서 특정 무엇을 봐야 한다라는 정해진 루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한 나라, 유명한 도시, 유명한 레스토랑은 사실 마케팅과 미디어의 작용이 크다. 그 유명한 곳들만 둘러보는 것은 마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면서 구석구석 골목길을 둘러보고 현지인들이 가는 작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부다페스트를 샅샅이 둘러보고 나만의 취향이 담긴 여행을 하고자 한 달에 조금 보태 40일을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그린 부다페스트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리

이번 여행에서 마음먹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림으로 기록 남기기'이다. 먹고살면서 손을 놓고 있었던 그림을 오랜만에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이번 여행의 곳곳을 그림으로 그려오겠다고 생각하고 떠났다. 그림들을 모아서 책으로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 

과거에는 기록을 그림으로 남겼지만 실제와 똑같은 사진 기술에 밀려 더 이상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사진에 비해 그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제와 똑같지도 않기에 사실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비효율성이 또한 그림의 매력이며 그리는 사람의 손맛이 더해져 유일하다는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 묘하다. 웹에서 검색해보면 나보다 잘 찍은 사진들이 널려있는데 그림은 나라는 사람의 표현이 들어가기에 더 나만의 것이라는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입시미술 이후 꼭 14년 만에 다시 잡아보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펜으로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그려나갔다. 쉽지 않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하여 복잡한 건물과 풍경까지 전부 그려낸 후의 희열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짐은 미니멀리스트처럼

여행을 많이 다녀보니 짐이 정말 짐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거운 배낭 혹은 캐리어를 끌고 조금만 걸어도 지치는데 버스, 지하철 등을 탈 때는 정말 버리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또 그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기지 않아도 좋다. 이번에도 최소한으로 짐을 챙겼고 나와 뗄 수 없는 노트북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옷가지와 세면용품 정도만 17인치 캐리어에 담았다. 그래도 온천이 유명한 부다페스트이기 때문에 수영복은 꼭 챙겨야 한다.


17인치 캐리어에 짐은 최소한으로.


헝가리 돈인 포린트는 도착해서 일주일 정도 사용할 돈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ATM에서 출금해서 사용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사용할 유심을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미리 구매해갔다. 헝가리 도착시간이 저녁이라 유심 사느라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버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30일짜리를 구매하고 나머지 열흘은 가서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나머지 열흘은 지리를 다 익힌 덕에 유심 없이도 잘 지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국날이 밝았다.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이 바로 이 공항 가는 길! 그건 다음 포스팅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