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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Apr 25. 2016

독서 권하는 사회, 그리고 신성화 되는 독서

그래서 쉽게 꺼내기 힘든 생각들

예전에, 그러니까 2000년 초반 즈음, "느낌표!"라는 간판 주말 예능프로에서 독서를 권했다. 김용만, 유재석이 진행했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프로는 지금 생각해도 꽤나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예능에서 책을 권하다니, 그것도 주말 예능에서 말이다. 그리고 '꿈꾸는 다락방'이나 여러 스타작가들의 책들이 다시금 책읽기 신드롬을 불러일으켜서 그런지 TV에서, SNS에서 또 한 두어달 쯤 전에는 다니는 회사에서 교육을 했을 때도 '독서'라는 말은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 날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자면, 일하지 않고 교육이나 들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기뻤던 것이 한 가지였고, 두 번째는 강연 내용이다. 아마 "여러분, 책을 몇권 읽으십니까?"라고 강연을 시작했던 것 같다.


MBC 예능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中

"당신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습니까?"


"여러분 1일 1독 하십쇼"


"자투리 시간에 음악듣지 말고 책 읽으면, 1주일에 적어도 2~3권은 가능합니다"


"조기독서교육이 영재를 만든다"


담배가 백해무익의 '안 좋은 것'이라면, 독서는 흔히 백익무해의 '좋은 것'이라고 한다. 흡연자끼리의 유대를 비롯해서 담배는 어쨌거나 좋은 점을 우겨서라도 찾을 수 있으나, 독서에 관해서는 나쁜 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지적이고 샤프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진취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며, 박학다식, 겸손 등 온갖 좋은 말과 의미로 통한다. 물론 취미란에 '독서'는 제외하고.


1. 한 달에 책 몇 권이나 읽으세요?

만약 상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케이스는 두 가지 정도로 추려낼 수 있다. 첫째, 정말 할 말이 없었는데 마침 책이 수두룩히 쌓인 공간에 있는 경우. 둘째, "나는 '독서'라는 꽤나 괜찮아 보이는 취미를 가진 사람인데, 난 이 사실을 지금 너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어디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명한 실험이 있다. EBS에도 나왔고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왔으니 '아~' 할만한 내용이다. 여러 실험 사례들이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린 아이들을 교실과 같은 실험실에 두고 문제를 풀게 한다. 처음에는 물론 쉬운 문제로 시작한다. 많은 아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룹 1 : 높은 점수에 대한 칭찬 부여

    그룹 2 : 그에 상응하는 노력에 대한 칭찬 부여

점차 난이도를 올린다. 풀기 힘든 문제들이 나온다. '도전하시겠습니까?'를 물어본다.

    그룹 1 : '도전'을 외치고 답지를 베끼거나, 더 이상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룹 2 : 그래도 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독서교육은 누런 갱지에다 학년 / 반 / 번호 / 이름을 적고, 읽은 책의 제목 / 저자 / 출판사를 나열했다. 그리고 매월 말 그 누런 갱지를 가장 빽빽하게 채운 친구는 상을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책 내용은 몰라도 친구들은 책 이름을 대면 저자와 출판사를 귀신같이 꿰뚫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차례 이루어진 '독서'의 '교육'에서 책을 읽었다고 하면 어떤 내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저자가 헛소리를 하진 않았는지, 여자친구를 만들 때 한 번쯤 쓸만한 멘트는 없었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죄다 그저 "몇 권 읽었니"라고만 물었다.

'권 수'로 표현되는 정량적 수치(그리고 그 수치에 미달한 사람은 '디지털 문맹'이니 비아냥 거리며 아주 큰일난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 그리고 대학교까지 이어지는 그 놈의 '독후감'은 억지로 텍스트를 소비해야 하게끔 만들었고, 독서를 취미로 만들 기회를 더욱 적극적으로 방해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가 용감하게 '독서로 인한 스트레스 연구'를 한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2. 그 주인공들

이제 그 주인공들이 나올 차례다. 어디 알라딘이건, 교보문고건, yes24건 검색창에 '독서'라는 키워드로 들어가면 굉장히 많은 책들이 나온다. 독서에 대한 책들. 한 권, 한 권 출판될 때마다 이 한 권 12,000원의 값에는 컨텐츠에 대한 값보다는 마케팅 비용때문에 이렇게 비싸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슷하게 돌아간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1. 책을 읽어야 한다.

        1) 책을 읽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2) 인공지능이 발달할지라도 인간 고유의 직관, 감정만큼은 그것이 따라올 수 없다.

        3) 주입식 암기의 시대는 끝나고, 창의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4) 바야흐로 '정답을 맞히는 사회'에서 '정답을 만들어야 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2. 책을 읽지 않는 한국 사람들

        1) 독서 통계 : 아마도 OECD꼴찌

        2) 지하철에서 책 읽는 일본사람들

        3) 책 안읽는 아이들과 교육 성취도 그리고 미래


    3. 그래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남독하라.

        2) 정독하라.

        3) 재독하라.

        4) 낭독하라.

        5) 필독하라.

"당신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아주 큰일난거야"

"그래서 지금 내가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통해서 얼마나 큰일났는지 한 번 보여주겠어"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야"

"이렇게 읽어봐"


절정은 아동 섹터에 있다. 아동용 섹터를 아예 크게 만들어놓고 장사를 한다. 겉표지의 재질이 얼마나 뛰어나고 두꺼운지, 내용보다 겉표지가 두꺼운 책들도 있다. "독서가 애들 두뇌발달에 그렇게 좋데요~" 한 마디면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렇게 몇 백원 아끼려고 택시 탈 걸 버스 타고, 버스 탈 걸 걸어오는 경제적인 사람들이 갑자기 합리성을 잃어버린다. '공포 마케팅'과 '모성애'를 결합시킨 건 대단한 비즈니스 마인드 아니겠는가.


3. 재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어야

독서는 정말 백익무해하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독서가 좋다는 건 다 알고 있다. 그치만 '독서를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던지 '독서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라'던지 하는 마케팅은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하나의 취미로서 독서를 대했으면 좋겠다. 농구가 재미있어서 농구를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 여행을 하는 것처럼, '개인의 흥미, 입맛'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그래서 맛집탐방보다 독서가 고결한 취미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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