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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Apr 17. 2020

카라바조 ; 속죄의 마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도망자로 살아간 천재 화가


어둠 속에 두 사람의 모습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소년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들어 올린 채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본다.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양치기 소년이 조약돌 다섯 알을 넣고 만든 회전시켜 날린 물매로 단번에 적 장수의 이마를 적중시켜 쓰러뜨리고, 칼로 목을 베어버린다. 소년 다윗은 하느님이 선택하고 보호하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처단해야 할 적이자 악의 상징이었다. 어처구니없이 기습공격을 당한 골리앗은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하지 못하고 쓰러졌고, 적수가 없었던 골리앗이 쌓아온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의 눈은 무력했고 허망해 보였다.


목이 잘린 골리앗의 얼굴은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골리앗의 표정은 슬픔과 허망함이 함께 느껴진다. 골리앗의 입장에서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였다. 블레셋에서 적을 제압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동료 군사들에게 그의 존재만으로 사기를 심어주었던 무적의 장수였는 데, 신에게 선택받은 자 앞에서는 한 없이 무력했고, 다윗을 돋보이기 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차라리 골리앗이 물매에 맞아 일격에 쓰러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만약 목숨이 구차하게 남아있었다면 과연 골리앗은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무너지는 자존감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미간을 찌푸린 채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응시하는 소년 다윗의 얼굴도 밝지 않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죽어 마땅한 존재였지만, 다윗의 표정에는 적 장수를 물리쳤다는 기쁨보다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골리앗은 누군가를 너무 닮아있다. 바로 이 그림을 그린 그 자신,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다. 더군다나 소년 다윗의 얼굴도 카라바조의 어린 시절 얼굴을 따왔다고 한다. 결국 다윗과 골리앗 모두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삼아 그린 이중 자화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그림을 통해 카라바조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사실 카라바조는 교황에게 사면을 받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는 테니스 경기 도중 화가 나 상대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탈옥을 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교황은 사형선고를 내리고 카라바조의 목을 가져오라고 했다. 카라바조에게 교황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몇 년 전 산탄젤로 다리에서 선대 교황이 베아트리체 첸치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도끼날이 그녀의 목을 베어 공개 처형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벗어나려고 존속 살해한 저지른 베아트이체와 그녀의 가족을 무참히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한 선대 교황의 행적을 직접 목격했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에도 정상 참작 따윈 없었고, 처형은 무자비했고 잔인했다.  그림으로 명성을 쌓아왔던 카라바조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던 자신의 그림을 그려서 사면을 추진했던 교황의 조카에게 바친다면 교황이 죄를 사면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 그림은 만들어졌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다. 태어난 고향 카라바조의 지명 이름을 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라고 불렸다.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예술가가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있었고, 100년이 지난 이후에는 바로크의 한 복판에 그가 있었다. 빛을 이용한 명암의 선명한 대비로 그림을 표현한 것처럼 그의 삶에도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놀라운 재능을 가졌지만 폭력성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세상 무서운 지 모르는 망나니처럼 살았지만, 뒤늦게 후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비친다.  그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 밑바닥을 보여주었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면서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죄를 사면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찌질함도 보여주었다.  예컨대 몰타의 기사단에서 기사 작위를 받으면 사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몰타까지 건너갔으며, 사면을 받기 위해 교황의 조카에게 '필사적'으로 그림을 바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면받기 위해 로마에서 몰타로 내려가 결국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들통나고 동료기사와 싸움까지 일으켜  감옥에 갇힌다. 다시 탈옥해 시칠리아로 도망을 갔다. 그 결과 기사단에서는 제명이 되고, 오히려 몰타 기사단으로부터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객의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교황의 사면이 절실했던 카라바조는 품 안에 교황의 조카이자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바칠 세 개의 그림을 들고 로마행 배를 탔지만, 경유지 팔로에서 스페인 경비대장이 카라바조를 다른 사건의 범죄인으로 착각하고 체포하여 구금되었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을 때는 이미 배는 떠났고, 그림을 되찾고 승선하기 위해 배의 다음 기착지인 프르트에르콜레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걸어갔지만, 그것에는 배도 그림도 없었다. 심신이 지친 카라바조는 결국 열병에 걸려 낯선 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성서 속의 이야기를 그린 성화이지만, 어쩌면 그는 이 작품으로 자신의 마음을 넌지시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자신의 얼굴을 다윗과 골리앗의 모습에 투영하여 죄를 저지르기 쉬운 인간의 나약함과 위태로움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미젤란젤로인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한 일화에서 성화에 그릴 천사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시골마을의 목동을 모델로 삼았다가, 20년이 흐른 이후 악마의 모습을 그릴 모델을 찾았더니 바로 그 목동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목동은 물론 카라바조가 아니지만, 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명과 암으로 사물을 더 극적으로 표현한다. 빛과 어둠이 사물을 분명하게 형상화하는 것처럼 선과 악은 인간과 늘 함께하고,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하는 위태로운 모습이 하고 있다. 인간의 태생적 불완전함을 몸소 보여준 카라바조, 그 자신처럼 말이다. 인간은 결국 선과 악의 모습을 함께 지닌 채 죄을 저지르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이니, 이를 참작하여 용서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는지.


한편, 찡그린 골리앗의 주름과 허공을 응시하는 초점 없는 눈은 세월을 견디며 열심히 살아왔건만 한 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쌓아 온 명성이 무너지는 망연자실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듯 애처롭다. 이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다윗은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지만, 애써 감정을 감추며  범죄자이자 신으로 버림받은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며 엄중한 결단을 내린다. 어쩌면 스스로를 처단하여 속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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