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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훈 Mar 01. 2022

희망은 지역에 있었다

2021.6.25 <옥천신문> 기고


그간 묵혀두었던 일기를 옥천에서 꺼내들었다. 2020년 5월 7일자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맞다. 국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청년 등 내가 주로 쓰는 용어들은 대개 군집명사였다. 유무형의 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데 있어 이런 군집명사만큼 사용하기 편한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썼다. 어쨌거나 국민은 국민이고, 노동자는 노동자니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유의 형태로 의미가 전달될 것이라는 데에 의심할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일기 끝머리는 이렇게 맺는다. 


‘군집명사. 그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 그것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엄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어쩌면 어느 한 개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상세히 설명, 공감해내려는 노력을 기어이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단어다. 주의해야 한다.’


군집명사를 남발하는 것이야말로 군집 속의 개인들이 겪고 있는 어떤 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비릿한 악취를 맡은 것처럼 반응했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김훈 작가의 <한겨레> 기고 글을 읽고 난 직후였는데, 작가는 산업 현장에서 해마다 노동자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팔다리를 잃는 현실을 통탄했다. 동시에 정부가 이 참사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상용직과 일용직 등으로 구획되는 군집들 사이의 문제로 인식해, 이 무참한 죽음들의 개별적 구체성을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나는 이게 과연 정부만의 일일까 생각했다.


이미 신문에서도 ‘노동자’는 있지만 없는 단어가 된 지 오래였다. 노동 현장에서는 매일 같이 떨어지고 끼이고 뭉개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도, ‘노동자 몇 명이 사망했다’고 너무나 쉽게 읽히는 문장들로 헤드라인이 장식되고 지면이 채워졌다. 뇌리를 스쳤지만 가슴엔 남지 않았다. 나와는 너무 먼 얘기 같았다. ‘신분 대신 이름을 적시했더라면, 작업 현장이 아니라 그가 일터까지 걸어온 길을 조명했더라면 마냥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지만 지면과 취재 역량의 한계의 논리 앞에서 금세 휘발됐다. 


더 치명적이었던 건 언론이 쉽게 쓰는 만큼 대책은 졸속이었다는 것이다. 요즘 화두인 청년을 예로 들자. 주류 언론에서 말하는 청년이란 통상적으론 ‘인서울 4년제 대학생’, 개중에서도 주류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였다. 이들의 말은 곧 청년의 말이 됐다. 조국 사태에서 촉발된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의 촛불이 20대의 분노로 보도됐던 게 단적인 예다. 여기에서 ‘능력에 따른 보상과 차별’이란 이들의 요구가 공정 담론의 기본 값으로 관철됐다. 비수도권 대학생, 비대학생들의 촛불은 배제됐다. 사회는 적극 응답했고, 대입제도 개편안은 1년 만에 바뀌었다. 화가 났지만 마땅한 대책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다시 옥천이다. 이곳 <옥천신문>에서 인턴기자로 활동을 한 지도 벌 써 두 달이 넘었다. 인턴기자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정확히는 ‘옥천신문 저널리즘 스쿨’의 교육생이다. 옥천 땅 위에 정착해 지역성을 익히고, 취재와 기사 작성을 통해 지역 언론을 배운다. 그동안 중앙 언론을 통해 배운 것들과는 달랐다. 모든 게 거꾸로다. 제도가 아닌 사람을, 체계가 아닌 관계를, 지방이 아닌 지역을 응시하게 한다. 취재 내용은 부실할 수 있어도 취재 당사자의 이름과 사는 곳, 나이를 빠트리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분명히 거꾸로다. 특종이라면 당사자의 이름쯤이야 가볍게 지워버리는 중앙 언론과는. 희망은 지역에 있었다. 


실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낱낱이 싣는다는 건 언론의 본령인 객관성을 높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신문에 싣는다는 것은 곧 공론장 진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며 진행해 오고 있는 상가 취재나 옥길만사(옥천, 길 위에서 만난 사람), 지역 농민 인터뷰에는 기획·탐사 보도보다도 귀중한 가치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농민, 노동자, 청년, 여성 등 오늘날 빛이 바래버린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알게 됐다. <옥천신문>이 창간하기 전 옥천의 군민들은 지역신문에 싣고 싶은 내용으로 ‘지역민에 필요한 생활 정보’에 이어 ‘일반신문에서 보도하지 않는 사실’을 꼽았다는 것을. 중앙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보도에 싫증을 느껴 <옥천신문>이 지역민들의 실제 삶을 비추는 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란 것이다. 그래서 <옥천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옥길만사’ 취재를 가던 길 위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일기장을 꺼내든 것도 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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