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주의 인사말... 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
딸이 결혼한다. 요즘의 결혼문화는 우리 때와는 사뭇 달라서 결혼의 알림은 부모에게 고하는 통보에 지나지 않으며 이후 모든 일정은 두 신랑 신부의 의지와 발품으로 진행이 되는 양상이다.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는 출발선상에서 어엿한 어른이 된, 한때는 그저 소중하기만 한 아가였던 이들이 자신의 앞길을 척척 헤쳐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가도, 아~ 이렇게 부모의 역할은 저물어 가는 것이로구나 하는 현실인식에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것은 스스로 용서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일련의 결혼 준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으니 그것은 혼주의 인사말 준비!
요즘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대세인지라 신랑 측 혼주가 성혼선언을 하면 우리, 즉 신부 측 혼주가 인사말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전문사회자가 아닌 우리 혼주(나의 남편이자 신부의 아빠)를 위해 인사말 원고를 써내려 가면서 이제야 나도 딸의 결혼에 한몫을 하게 되었음이 뿌듯하다.
이렇게 부모의 그늘은 그들에게서 점차 사라지고 그들도 이제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살아가겠지.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며 한 땀 한 땀 써 내려간 혼주 인사말을 딸의 아빠가 잘 읽어주기를...
설혹 읽다가 실수하더라도 써 내려간 행간의 진심은 꼭 전달되기를...
우리 아들 ○○○과 우리 딸 △△△이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좋은 날에
귀한 시간 내시어 발걸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역사 이래 온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오늘 2025년 5월 18일 지금 이 시간 온 우주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아름다운 아들과 딸,
신랑과 신부는 우리 ○○이와 △△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의 공치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의 아들, 딸이 되어주어 고맙고 잘 자라주어 더욱 고맙고 오늘 이렇게 선물 같은 순간을 우리에게 주어
더더욱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 이후 멋지고 아름다운 이 부부는 온전히 그들의 시간을 경영할 것입니다.
그들의 앞길에 마냥 꽃길만 놓여있지는 않을 것이며, 때론 비바람에 떨고 또 때론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다 혹시 잡은 손을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생긴다면 오늘의 이 순간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최근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아빠의 장면을 보았습니다.
드라마 속 아빠는 딸에게 “힘들면 빽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신랑과 신부에게는 “빽” 보다 “고(GO)” 하기를 권장합니다.
”고(GO)“를 함으로 얻어지는 성취와 희망, 사랑의 완성이 ”빽“으로 말미암은 사소한 안도감을
능히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봐도 봐도 듬직하고 멋진 우리 사위 우리 아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월의 신부 우리 딸 우리 며느리 △△이,
우리 모두 한가족이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이곳에 이렇게 와주신 귀한 손님 여러분!
○○○과 △△△이 서로가 서로의 영원한 지붕이 되어주기로 하는 오늘의 약속을
부디 기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