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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호 May 17. 2024

나파밸리 와이너리 여행

와이프와 함께 3박 4일 나파밸리 (Napa Valley)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4월 초였는데 캘리포니아 답지 않게 날씨가 춥고 나빴지만, 그래도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나파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로 45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미국은 땅도 넓고 와인 소비량도 많다 보니,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은 아주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나파밸리는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미국 와인의 상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첫 번째로 방문한 와이너리는 1976년 '파리의 심판'으로 유명한 ’스택스 립 와인 셀라 (Stag's Leap Wine Cellar)‘입니다.  70년대 초까지 미국 와인은 세계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았고, 와인 하면 역시 프랑스였습니다.   그래서 와인에 대한 프랑스의 자존심은 엄청났는데, 1976년에 블라인드 테스팅을 한 결과, 미국 와인이 1등을 차지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을뿐더러,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 바로 '파리의 심판'입니다.  이때 레드 와인 1위를 차지한 와인이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S.L.V. 와인'이었습니다.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미국 와인의 위상이 엄청 높아졌고, 미국 와인 산업도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이때 1위를 차지한 '1973년 S.L.V. 카르베네 쇼비뇽 와인'은 미국 와인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나파 밸리에는 '스택스 립'이라는 와이너리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위에서 말한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이고 또 하나는 '스택스 립 와이너리 (Stags' Leap Winery)'입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는 파리의 심판으로 명성이 높지만, '스택스 립 와이너리'도 시라 와인으로 꽤 유명한 큰 와이너리입니다.  두 와이너리를 헷갈리기 쉽고 실제로 네비도 다른 곳으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두 와이너리가 비슷한 이름을 갖게 된데도 재밌는 역사가 있는데, '스택스 립 와이너리'는 1893년에 생겼고, '스택스 립 와인 셀라'는 1970년에 생겼기에, '스택스 립 와이너리'가 70년 이상 먼저 생겼지만, 1920년대 미국의 금주령 이후 '스택스 립 와이너리'는 와인 생산을 하지 않다가 1971년에서야 다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스택스 립 와인 셀라'가 엄청난 명성을 타게 되자, 두 와이너리는 서로 원조라고 소송에 맞소송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두 와이너리 모두 '스택스 립'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무승부 판정을 내려서, 두 와이너리 모두 이름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택스 립은 그 동네의 뒷산 이름입니다.)


현재 '스택스 립 와이너리'는 나파밸리의 '베린저' 등 여러 큰 와이너리를 소유한 호주의 '트레저리'라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고, '스택스 립 와인 셀라'는 워싱턴 주의 대표 와이너리인 '샤토 생 미셸'과 이탈리아의 '안티노리 와이너리'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가, 최근에 '안티노리'가 전량 소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는 호주 회사 소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회사 소유'입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에서는 '페이', 'S.L.V.', '캐스크 23'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데, 이 와이너리가 소유한 땅이 한쪽은 물이 잘 빠지고, 다른 한쪽은 물이 잘 안 빠지는 서로 다른 특성의 땅을 갖고 있어서, 물이 잘 빠지는 땅에서 나온 포도로는 '페이'를 만들고, 물이 잘 안 빠지는 땅에서 나온 포도로는 'S.L.V.'를 만들고, 두 땅에서 나온 포도 중 최고를 합쳐서 만든 것이 '캐스크 23'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페이'와 'S.L.V.'는 같은 카르베네 쇼비뇽으로 만든 와인임에도 맛이 꽤 달랐는데, 'S.L.V.'는 좀 무겁고 떫은맛이 강한 반면, '페이'는 훨씬 부드럽게 넘어가고 산뜻한 맛이었습니다.   '캐스크 23'은 두 와인의 밸런스가 딱 맞는 정말 훌륭한 와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와인을 보관하는 지하 동굴도 투어 할 수 있는데, 다른 와이너리보다 꽤나 깊이 동굴을 파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차지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1973 S.L.V. 와인




둘째 날에 방문한 와이너리는, 나파 밸리 와인의 최고의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오퍼스 원 (Opus One)' 와이너리입니다.


'오퍼스 원'은 나파 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메이커인 '로버트 몬다비'와 프랑스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인 '샤토 무통 로칠드'가 함께 최고의 나파 밸리 와인을 만들고자 만든 와이너리입니다.  미국 와인들은 대개 단일 품종 와인이 많지만, '오퍼스 원'은 보르도 스타일로 여러 포도 품종을 섞는 '블랜드 와인'입니다.


워낙 자부심이 강한 와이너리라 그런지 생산하는 다른 와이너리와는 달리 와인 클럽 프로그램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와이너리 역시 꽤나 고급스러운 모습에 아주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테이스팅 내내 VIP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서는 2014년, 2018년, 2019년의 오퍼스 원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었는데, '캐스크 23'과 비슷하면서도 더 부드럽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정말 완벽에 가까운 느낌의 와인이었습니다.  와인 테이스팅이 끝나면, 와인 생산하는 곳과 와인통을 보관하는 곳도 구경시켜 줍니다.


사실 '오퍼스 원' 와인은 '신의 물방울' 1권에서 싼 와인이 비싼 와인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때 '비싼 와인'을 담당한 와인이라 좀 까인 느낌이지만, 실제로 마셔보니 싼 와인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오퍼스 원 2014빈 , 2018빈, 2019빈을 시음할 수 있었다.




셋째 날에는 나파 밸리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인기 있는 와이너리들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와인을 잘 모르고 관광으로 나파밸리를 왔다면, '스택스 립 와인 셀라' 나 '오퍼스 원' 같은 와이너리보다는, 뭔가 디즈니랜드처럼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와이너리에 가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중세 성 모양의 '카스텔로 와이너리 (Castello di Amorosa)', 스키장처럼 곤돌라를 운행하고 높은 곳에서 좋은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스털링 빈야드 (Sterling Vineyards)', 그리고 공원처럼 마당을 개방해서 자유롭게 피크닉을 할 수 있는 '브이사뚜이 와이너리 (V. Sattui Winery)'를 가 보았습니다.


먼저 방문한 '스털링 빈야드'는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2020년 나파밸리 화재 이후에 다시 재건을 해서, 곤돌라와 건물들이 꽤 깨끗하고 새로웠습니다.  와이너리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서 나파밸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는 음식을 페어링 해주는 테이스팅을 했는데, 100불대의 여러 리저브 와인들을 주고 페어링 해주는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와이너리를 구경하면서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 셀프 테이스팅 프로그램도 있는데, 와인 클럽 가입 권유의 부담도 없고 자유롭게 와인을 마시며 와이너리 곳곳과 나파밸리의 뷰를 구경할 수 있기에, 관광객들에겐 아주 좋습니다.


스털링 빈야드는 실제로 꽤 큰 와이너리이고 일반적으로는 저렴한 대중적인 와인을 많이 생산하지만, 여러 포도밭을 빌려서 리저브 와인을 만들기도 하기에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탁 트인 나파밸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털링 빈야드


스털링 빈야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스텔로 와이너리가 있어서 갔는데, 이곳은 중세 성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의 와이너리라서, 관광객들이 엄청 많이 방문합니다.  아마도 나파밸리에서 가장 붐비는 와이너리 중 하나인 듯싶습니다.


이 와이너리는 시중에 와인을 유통하지 않고, 오직 와이너리에서 직접 판매만 합니다.  와인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테이스팅 할 때 이전 세 와이너리와는 달리 와인잔부터 좀 싼 와인잔이어서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놀이동산에 와 있는 느낌이고 와인은 좀 뒷전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카스텔로 와이너리


저희의 마지막 와이너리 방문은 브이사뚜이 와이너리였는데, 여기는 부담 없이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할 수 있기에 역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와이너리에 큰 마트가 있는데, 그냥 여기에서 와인을 사다가 잔디밭에서 싸 온 음식과 함께 먹으며 피크닉을 하면 됩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이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딱 좋을 듯싶습니다.   저는 이곳에 왔을 때 이미 와인을 많이 마셔서, 더 이상 테이스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피크닉을 즐기기 좋은 브이사뚜이 와이너리




나파 밸리엔 이 외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와이너리들이 정말 많습니다.  와인 초보에겐 초보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와이너리들이 많고, 또 와인 애호가들은 나름대로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이너리들이 많기에 정말 관광하기 좋은 곳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기에, 샌프란시스코를 관광할 때 3-4일 정도 더 시간을 내서 관광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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