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상황에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중
두둥,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일요일 아침.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출발 전부터 남편과 나는 몸도 마음도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떠났다.
어렵사리 도착한 호텔.
남편은 컨디션 난조로 방에 남겨두고,
나는 아이와 함께 경주시내로 향했다.
아이에게 계속 말했다.
"흐린 날을 즐길 수 있어야 진짜 일등이야. 흐린 날도 그 나름대로 좋은 거야."
사실, 그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주문이었다.
경주의 벚꽃은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뿐.
바람 불고, 비 오고, 춥고, 배도 고팠다.
아이와 대릉원 돌담길을 걸으며 먹을 곳을 찾아 헤매는 우리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 같았다.
만개한 목련나무도 눈에 들어왔지만,
솔직히 감흥이 없었다.
아이에게 큰소리쳤던 나였지만, 사실 꽤 지쳐 있었다.
다행히 따뜻한 콩국 한 그릇으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사우나를 하고,
보문호수 근처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남편은 여전히 호텔방에,
아이는 TV앞에.
흘러나오는 1980년대 노래를 듣다가
문득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렇게 가까운 행복을 왜 이제서야 누리기 시작한 걸까?"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랬다면 그렇게 매일을 유예하며 살지 않았을 텐데.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너무 계획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어떤 계획도 내 뜻대로 된 적이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면 되었을 텐데.
이번 여행도 그래서 떠난 거였다.
"날씨가 어떻든, 그냥 주어진 하루를 즐기자."
결국, 내 머릿속의 벚꽃 만개한 경주는 없었다.
하지만 흐린 날씨 속에서 쫀드기도 먹고, 콩국도 먹고,
보문호수에서 맥주도 한 잔 했다.
따뜻한 목욕탕에서 피로도 풀었다.
남편은 호텔방에만 있었고,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간 건 하나도 없었지만,
아이와 나는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를 쌓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래야 매일 주어진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흐린 날씨도, 피지 못한 벚꽃도,
모두 신이 내게 주신 하루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말고,
그날그날 주어진 대로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쫀드기도 먹었고, 콩국도 맛있었고,
목련도 만개했으니, 뭐 그럭저럭 괜찮은 여행이었다.
"Resilience is not about being invulnerable to hardship.
It's about accepting adversity as part of life."
- Adam Grant
(회복력이란 궂은 날씨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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