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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Aug 19. 2024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기만 할까?
백중기도를 회향하다가
불교에서는 7번째 보름을 백중날이라고 한다. 이 날은 불교에서 돌아가신 선망 조상들을 위한 재를 지내 그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중요한 날이다. 나는 어제 그 백중기도 막재에 참석해서 시댁 쪽 어른들의 명복을 다시금 빌었다. 그리고 남편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에 대한 미움이 사라져 그의 영혼이 평온을 얻기를 기도했다.
스님 법문을 듣다 보니, 부처께서는 중생들이 모두 부처가 되기를 희망하였다고 하는데, 그 방법으로 하나는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떠한 분별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좋다, 싫다. 애정한다. 싫어한다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과 대상에 대해 품는 그 분별의 마음, 그 판단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런 거 같다. 분별의 마음.. 나는 과연 내 감정에 대해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가령 내가 어떤 대상 혹은 내 삶에 대해 한순간에는 좋고 행복하고, 사랑스럽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미칠 듯이 밉고, 원망스럽고 저주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자살충동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들을 조사해 보면 그 한순간을 넘기면 그런 자살시도라는 무서운 행위까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그 시점의 감정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린 그 수렁텅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거라고 말이다. 나도 그런 순간이 종종 있다. 남편이 이렇게 아프게 된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폭발하기도 하고,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때론 통증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나에게 철없이 말한다. 그리고 주변인들을 힘들게 한다. 나는 그럴 때면 묵묵히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오래되다 보니, 때론 지치기도 하고, 간혹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그 상황이 도화선이 되어 나의 분노가 같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언제 끝나나? 내 기도에 신은 응답을 결코 해주지 않으시구나 그냥 떠나고 싶다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 감정을 내가 얼마큼 신뢰할 수 있을까? 결국엔 감정은 일시적이고 변화한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 상황도 분명 변화할 것이다.
여여해지다. 백중날 나는 스님 법문을 듣고 나를 내 감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각자가 쳐한 이 상황, 사물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우리를 구속할 수 없으며, 그 모든 것에는 반드시 문이 있다는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본다. 그 문을 가볍게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다. 우리에겐 언제나 또 다른 길이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감정에 매달리지 말자.
우연히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시인은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너무 멋진 표현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쩌면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가면, 분명 시원한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그라스 혹은 핑크 뮬리 같은 갈대들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평온한 날도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