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이는 엄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by 따뜻한 불꽃 소예

난 이제 훌쩍 4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고, 회사에서는 연차가 꽉 찬 시니어 직원이다.


겉으로 보면 단단한 어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날은 숨이 턱턱 막힌다.


남편의 항암이 이어지고 있고,

다시 아빠의 항암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연초라 바쁘고, 아이는 방학에 들어간다.


역할은 많고,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처럼

삶의 숙제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다.

어쩐지 또 한 번, 버텨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기분이다.


그날 저녁, 엄마와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순간 중학생 소녀가 되어버렸다.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고, 더 위로받고 싶었고, 그저 안기고 싶었다.

내가 힘겹게 걸치고 있던 갑옷을 벗고, 엄마에게만은 굳이 단단한 척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 앞에서는 잠시 아이가 된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와 싸웠다.

엄마를 오해하고, 미워했고,

엄마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엄마가 7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어린 시절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는 조심스레 나누고 있다.


"엄마 사랑해."

"우리 딸, 엄마가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아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버티느라

서로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늘 버티는 사람이었다.

가족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

흔들려도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사람.


그런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은

잠깐이라도 기대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엄마를 이해할 나이가 된 건지도 모른다.


엄마도 나처럼,

그때는 그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겠지.


철부지인가 보다, 생각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의 말 한마디에 울컥하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철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자존심보다 관계를 선택하고, 미움보다 이해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엄마의 그 말은 여전히 포근하다.

"우리 딸 수고했다."


그날 하루는, 조금 덜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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