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끼리 대화할 때 말입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무렵(08-12) 정도 즈음부터 신사동에 위치한 가로수길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무렵, 가로수길은 압구정에서 신사역까지 직선거리로 가로질러갈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에 자주 걸어다녔었고, 그래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 패션 디자이너의 편집샵 같은 곳들이 모여있는 곳이었고 그냥저냥 뭐 한적한 길가의 하나 정도였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급 뜨기 시작하더니 자고 일어나면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 오픈하고를 반복하는 격변의 길목이 되어 있었고요... 마침 유학붐이 불었던 시기가 가고(아니, 시기가 지나갈 수는 없는데요..그냥 지금은 일반적인 일이니까요..그당시는 그게 유행같은 것이었으니) 하나둘 유학간 자녀들이 귀국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로수길에서 커피스미스 같은 곳을 가면(아니 근데 사실, 아직까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테이블 건너로 영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외에 처음 나가본 것이 2010년도였던지라, 당시엔 사실 영어가 귀에 익지 않았었고..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도 못 알아들었거니와(..) 그냥 아 해외에서 자라난 재외동포인가보다. 영어 잘하니까 좋겠네. 부럽다, 집이 잘 사나보네 가로수길에도 오고. 그런얘들은 꼭 날이 흐려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잖아요 왜(...) 아시안의 갈색 눈은 파란색 눈만큼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를 않기 때문에 사실 선글라스를 구지 쓰지 않아도 된다고는 합니다만 뭐 모두가 선글라스를 쓰는 나라에서 살다 왔으면(=미국입니다) 선글라스를 쓰고다녀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영어를 쓰는 나라를 몇 군데 들락날락하다 보니 들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경우는 또한 몇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제 경험에 따라 일반화를 한 것 뿐이고 물론 예외는 큰 확률로 있을 수 있습니다
진짜로 2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
보통 이런 분들은 영어권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한국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주변환경이 한국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경우는:
-한국말로 말하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본인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사용하지 못함(부모님만이 한국어을 사용)
-존댓말과 반말 구분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자신있게 한국말을 하지 못함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한국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서 자라난 것도 아닌데/ 2개국어가 전부 모국어같
은 사람은: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한 사람. 한국말을 배우고 실력을 유지시키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한국말과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
조기유학의 산물입니다. 혹은 아주 어릴 적에 이민을 간 경우,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졸업 혹은 그 이상의 시절을 보낸 경우.
영어를 잘 하는 사람:
유학가서 4~5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영어환경에 노출된 분들+ 환경노출과 언어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 습득능력이 빠른 사람들입니다. 보통 흉내를 잘 내거나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함.
영어로 고급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
유학가서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그 기간이 짧은 경우(단기 어학연수, 1~2년 어학연수), 유학기간이 길었지만 모국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보다 더 길었던 분들.
이러한 경우 중 제가 아는 한, 영어가 한국말을 쓰는 것보다 편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환경에서 나고 자랐거나, 모국어와 영어 습득이 거의 동시에 시작된 사람들 정도(언어개념이 자리잡을 때의)라고 생각합니다. 조기유학을 한 사람들도 진심으로 영어가 모국어보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e.g. 술에 취하면 한국말이 먼저 튀어나온다거나)
제가 정말 솔직하게, 솔직하게 보고 느낀 것을 여기에 적자면... 위의 경우 이외에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쪽 사람들의 대열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일반화(집이 잘 살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똑똑할 것이다, 세련되었을 것이다+ 쟤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하여간 잘난 것이 분명하다 + 나중에 성공할 것이다 + 국제적으로 잘 나갈 것이다)에 속하고 싶어하는 열망의 표출 정도라고 하면 좋을까요.
벤쿠버에 지냈었을 무렵에 '바나나'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캐네디안 아시안Canadian asian: 캐나다에서 태어나 자란 아시아 사람.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얗다(westernized)는 의미로, 겉은 아시안이지만 속은 백인인 사람들을 칭할 때 쓰는 말이구요. 물론 딱 들으면 아시겠지만, 좋은 말은 아님^^) 경험상 이런 말을 듣고 크게 싫어하는 아시안을 못 봤지 말입니다.. 물론 속어를 정말 속어의 의미 자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정말 상대를 상처주려고 쓰는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억양으로 알 수 있고요) 아시안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위주의 국가에서 당당히 대화하며 살아간다는 자부심, 그보다 더 나아가서 2개국어를 구사한다는 자부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모국어!)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영어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이러한데 영어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노출되어서 그 사회에 속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면, 넌 백인인데 왜 이렇게 아시안처럼 행동해?(=너도 겉만 백인이지 나와 다를 게 없잖아?) 라던가, 내가 (영어는 이렇게 해도) 속은 완전 한국사람이야(이 말의 반응 유도: 아니야 너 완전 영어하는거나 생각하는거나 완전 백인인데 무슨 소리야!), 혹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함(반응 유도: 정말이지 뼛속까지 아메리칸이야 넌!)
해외에서의 상황이 이러한데, 이 상황이 한국으로 옮겨진다면 이 감정은 더욱 고조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영어는 부의 산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국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기분이란!
(인도에서는 더운 여름에도 긴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 부의 상징이라고 하더라구요. 푹푹 찌는 더위에도 긴바지=왜냐하면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기 때문에 춥다=집에 돈이 많다=부자! 의 공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모국어를 냅두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과 청바지를 입는 것과는 표현의 차이일 뿐이지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자기과시로.
영어에 노출되고 사람들이 영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서양권과 교류를 시작해서 서양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조선시대의 사람들도,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했다고 하니. 물론 당시의 사람들이 해외에서 지금만큼의 오랜 시간을 보냈을 리 만무하고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저는 그냥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는 말입니다. 너도 한국사람이고 나도 한국사람이고 우리 둘 다 모국어가 편한 거 아는데, 왜 구지 나한테 이야기하는데 한국말 사이에 영어문장을 섞어서 이야기하는거죠... 새삼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난 아직 그 세계에 편해지지 않은건지. 그래서 너하고 나하고는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없는건지, 그렇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 서로 통하는 뭔가가 있는건지. 난 아직 그 곳에 속하기엔 경력도 실력도 부족한 건지, 아니면 난 그냥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을 비꼬고 싶었던 것일까?
꽤 오랫동안 생각만 뭉게뭉게 해왔던 주제인데 어디에다 적기는 너무 꼬챙이 같아서 그냥 생각으로 떠다니게 내버려 두었었는데 오늘은 시간도 좀 많고 해서 한번 풀어보았음. 점심먹고 올게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