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삭제하며 살아가기.
어제와 오늘의 분명한 차이점은,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죽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과거가 단 1초 전 일지라도 참된 정의가 된다.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모두가 시간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물론 나 또한 자주 그런 생각으로 산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도 하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하루를, ‘후회’를 비우려는 목적이 아닌 ‘즐거움’으로 채우려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도 죽는 날을 기준으로 하루하루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가듯 살아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운동을 시작한 지 n일 째, 우리가 만난 지 n일 째 와 같은 기록들은 이를 증명해 준다. 물론 디데이가 우선시 되는 경우도 있다. 새해나 수능처럼 다가오는 큰 이슈를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어나갈때 보통 사용한다.
탄생의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임신 n주 차’처럼 우리는 생명의 탄생일부터 하루하루를 쌓으며 살아간다. 반대로 죽는 건 설레지 않아서 그런 걸까? 하물며 지나간 생일도 매년 디데이를 새겨 챙기는데, 제삿날에 디데이를 새겨 준비하는 현상은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즐거움을 쌓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후회는 털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후회가 남는다는 것이다. 후회는 쌓이지만 즐거움은 역치만 높인 채 휘발된다.
어제의 후회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제의 즐거움은 어제의 즐거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같이 더 큰 즐거움을 갈망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과거의 즐거움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과 반대로, 후회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후회를 털어버릴 수 있는 관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죽는 날을 기점으로 하루하루를 온전하게 삭제하면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는 날을 예상할 순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가 있다. 죽는 날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하루하루를 지우며 살아가보려 한다. 사라지는 하루하루를 보다 보면 두려움도 생기겠지만, 소중함과 더불어 후회를 털어내야 할 시기를 좀 더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열심히 살겠다는 개념은 아니다. 후회 없는 하루를 위해서 조금 더 삶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것에 가깝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결정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은 디데이 26,135일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