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회사에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점심시간 1시간에 7시간 근무(어쩌면 그 이상)가 끝나고 나면, 다시 대중교통 위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한다.
나의 반쪽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아니다. 나의 반쪽은 '일을 하고 있는 나'다. 자연스레 또 다른 나의 반쪽은 '일을 하지 않는 나'다. 이 둘이 합쳐져야지만 온전한 내가 된다. 24시간 중 절반 가까이를 일을 하는데에 사용한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 보낸 시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사소한 것 마저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나의 반쪽짜리 일기를.
01
새해 첫 담화박스
출처 : 술담화 유튜브
현재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고 있다. 나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인생 술, '담화박스'를 더욱 유익하고, 재밌고, 맛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유익함과 재미는 술과 함께 담화박스에 담기는 큐레이션 카드와 담화피디아로, 맛있음은 술담화 유튜브로 좀 더 시각적인 부분을 내세워 표현하는 편이다.
큐레이션 카드와 담화피디아는 보통 한 달 넘게 여유를 두고 작업을 끝낸다. 반면에 유튜브 영상 촬영은 배송일의 2주 전쯤에 진행된다. 담화박스는 매월 셋째 주에 구독자를 찾아가므로 그 달의 담화박스 촬영은 매월 첫째 주에 이뤄지는 셈이다.
누구에게나 새해 첫 시작이 중요하듯이 술담화에서도 새해 첫 서비스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다른 달에도 내부 시음회를 거치고 양조장을 방문하는 등 좋은 술을 담화박스에 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1월 담화박스는 '새해', '첫'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가서 인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출처: 술담화 인스타그램
청비성 약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2022년 새해 첫 담화박스에 담긴 술은 인산농장의 청비성과 두레양조의 두레앙 35%다. 청비성은 알코올 도수 16%의 약주(맑은 술)이며 새콤달콤한 맛과 구수한 여운을 갖고 있다. 영상 속에서 청비성과 만두전골을 페어링 한 이유는 청비성의 끈적거리는 점성이 입안 곳곳으로 흩날리는 만두소를 잘 잡아줄 것 같아서였다. 또한 술의 감칠맛과 만두소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의 감칠맛이 만나, 맛의 상승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추천한 페어링이다.
두레앙 35%
두레앙은 알코올 도수 35%의 일반 증류주다. 거봉으로 만든 증류주인데, 거봉의 향기가 달콤하게 배어있는 술이다. 두레앙은 전 중에서도 깻잎전과 고추전을 페어링 했다. 일단 도수가 높은 술이라서 기름진 음식도 깔끔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며 두레앙과 깻잎 · 고추 모두 싱그러운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기 어렵다면, 술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음식을 페어링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02
새해 첫 콜라보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업무가 나에게 올 때도 있다. 1월에 진행한 테이스티 나인과의 협업이 그랬다. 내용은 간단했다. 테이스티 나인의 밀키트 제품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선정하고, 큐레이션과 함께 상품을 구성하여 판매하는 업무였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상품을 큐레이션하고 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품 사진과 설명이 담긴 상세페이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준비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없으면 만들 수밖에!
음식 사진을 찍을 당시 나에게는 불행한 사실 1가지와 그나마 다행인 사실 1가지가 있었다. 먼저 불행한 사실을 말하자면 조리를 전공했던 난,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던 사람이란 거다. 상세페이지에 사용하는 음식 사진은 맛있어 보이게끔 찍어야 한다. 하지만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과 맛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생 때 푸드스타일링 회사에서 인턴을 해봤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엄청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서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실력이 좋지 않으면 어떠한가. 어차피 할 사람 나밖에 없는 걸. 그렇게 약 5일간의 불타는 야근을 거쳐 상세페이지가 완성됐고 문제없이 상품을 팔 수 있게 됐다.
만약 인턴 2개월이라는 작은 경험조차 없었더라면 주눅 들고 얼타다 업무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때론 하루의 경험이 10년 이상 경력자만큼의 힘을 낼 때가 있다. 경험을 소홀히 하지 말자. 힘들긴 했지만 이 경험 역시 간직하다 보면 언젠가 힘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03
새해 첫 독서
특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읽었다기 보단, 인스타그램에서 홍보하길래 구매해서 읽어봤다. 페이지 수는 약 160p로 두꺼운 편도 아니고 손쉽게 읽혔다. 가장 좋았던 점은 딱딱한 정보 전달 · 서술 방식이 아니라, 글쓴이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점이었다. 중간중간에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마치 사수에게 고민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고객을 위한 글을 쓴다는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더욱 빠져들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커리어에 고민이 있을 땐, 같은 커리어를 쌓아 나간 선배들의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거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365일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올해에도 회사에서 절반을 보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해가 됐다고 당장에서야 달라질 건 없지만, 한 해가 끝나갈 때쯤엔 모두가 한층 더 성장하게 된 2022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