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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회사는 왜 유제품 가공 산업에 뛰어들었을까?

도른자 마케팅의 최고봉, 빙그레의 시작

by 이재민
ⓒ빙그레


올 때 메로나


적어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 중에서는 메로나 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대놓고 메로나 포장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올 때 메로나'는 아니고, 'All That Melona'로 쓰여 있다. 빙그레의 진심 가득한 말장난은 그들의 세계관 '빙그레우스 왕국'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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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떼 메로나 부르쟝... 올 때 메로나 부르자... 올 때 메로나와 같은 맥락임을 확인할 수 있다.


투게더, 바나나맛 우유, 메로나, 슈퍼콘 등등 히트 제품만 해도 수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빙그레는 어쩌다 소위 도른자 마케팅이라 부르는 영역까지 침범하게 됐을까? 지금부터 빙그레의 역사를 시작으로 제품 이야기와 마케팅까지 알아보도록 하자.




01

빙그레의 전신, 대일 유업


빙그레라는 브랜드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대일 유업이라는 기업을 먼저 알아봐야 한다. 대일 유업은 아이스크림 등을 유통하던 홍순지 사장에 의해 1967년에 세워진 회사다. 처음에는 대일양행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는데 1971년이 돼서는 대일 유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대일 유업은 유업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유제품 사업을 했던 곳이다.


1972년에는 미국의 퍼모스트라는 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국내에서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후 대일 유업은 1973년에는 월남에 있던 미군 부대를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납품했고, 그렇게 일을 하던 중에 대일 유업 홍순지 사장은 남양주군 일대에 젖소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남양주에 내려가서 유제품 가공 공장을 짓게 됐다. 당시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미국이 돈을 빌려주던 AID 차관이라는 융자상품으로 95만 달러를 받아서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다. 건설 도중에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경영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돈을 빌리면서까지 지었던 공장이다 보니 나라 입장에서는 그냥 망하게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업은행과 농림부 장관이 나서 인수를 해줄 곳을 찾아 나서게 됐고, 결국엔 대일 유업이 1973년 어느 한 기업에 인수를 당하게 됐다.


그 기업은 바로 한국화학그룹이었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화그룹이다.




02

울며 겨자 먹기였던 한국화학그룹의 인수


한국화학그룹은 처음부터 인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한국화학그룹은 말 그대로 화약산업을 개척한 회사로,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최초로 만든 회사다. 대일 유업이 다루고 있던 유제품이랑은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화학과 유제품은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알고 있는 분야로 사업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모르는 분야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농림부 장관의 인수 제안과 현금도 잘 돌고 수익성도 높은 장점을 바라보며 식품업에 뛰어들게 됐다. 또 한국화학그룹은 화학을 만들기 때문에 강하고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런 이미지를 소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비재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03

역사의 시작 (Feat. 투게더, 바나나맛 우유)


인수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출시한 제품은 투게더다. 투게더는 1974년 1월에 출시된 아이스크림으로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중 오래된 아이스크림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투게더 다음으로 만든 제품은 1974년 6월에 나온 바나나맛 우유다.


1976년이 돼서는 퍼모스트에서 현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빙그레로 상표를 변경하게 됐다. 이때 상표를 변경한 이유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퍼모스트와 기술 제휴가 만료됐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로는 이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국어순화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상표명이 빙그레로 바뀌게 된 것이다.


참고로 회사명은 1982년 2월에 빙그레로 바뀌었고, 그 이전인 1979년에는 이미 상장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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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식품회사로의 꿈


대일 유업의 장기계획 중 하나가 바로 종합식품회사로 거였다. 그래서 1976년에는 요구르트를 개발해서 판매했고, 1986년에는 라면과 과자 사업까지 시작했다. 라면 사업에 진출한 이유는 뚜렷했다. 아이스크림에서 강세를 보이던 대일 유업 입장에서는 여름 시장은 걱정 없었지만, 반대로 겨울 시장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돈 좀 벌어보고자 라면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라면 시장에서는 너무 후발주자라 성장하기가 어려웠고, 1995년에는 우리나라 낙농업 시장에서 가장 큰 사건인 고름우유 파동까지 겹쳐 회사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진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라면을 포함한 여러 사업군을 정리하게 됐고 이때 당시 팔았던 베이커리 사업부는 삼립으로, 라면은 풀무원으로 가게 됐다.



출처:

(1) 우리나라에서 출시한 지 가장 오래된 아이스크림 TOP 3 _ 꿀팁 연구소

(2) '도른자 마케팅'으로 활짝 웃는 '빙그레' _ DBR

(3) 대한민국 아이스크림의 변천사 _ 조선닷컴

(4) 이건 미제 아이스크림입네까? _ 경제정보센터

(5) 바나나맛 우유, 빙그레우스의 '왕관'이 되기까지 _ 한국정경신문

(6) '퍼모스트'의 배다른 형제, 그리고 형님 회사를 잡아먹은 기업 극화 _ 개인 블로그

(7) 빙그레 홈페이지

(8) 빙그레, 해태와 함께 '투게더'...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 노린다 _ 유로모니터

(9) 롯데푸드 60년은 '한국 식품史' _ 한경

(10) 'B급 기밀 - 투게더 편' _ 빙그레컴퍼니

(11) 바나나맛 우유 이야기 _ 소비더머니

(12) 빙그레, 떠먹는 아이스크림 시대를 열다 _ 한국기업방송

(13) 빙그레 면접관들이 지겨워서 치를 떤다는 입사 지원 동기 _ 돈슐랭/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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