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예술, 진화하는 창작

AI 시대에서 생각하는 저작권의 새로운 지평

by 이재상


1. Intro : 변화의 파도 위에서 생각해 보는 오래된 질문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AI 시대, 창작의 지형도 빠르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은 창작의 방식과 결과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창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인간의 창의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이는 저작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실 창작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은 오래된 질문입니다. 이미 100년 전에도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예술의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질문과 오늘날 AI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 사실 같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둔 두 사건을 통해 창작의 의미와 저작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창작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변화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2. 마르셀 뒤샹의 ‘샘’, 예술의 경계를 허문 혁신적 질문


20세기 초.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기성품인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예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무엇이 예술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촉발했습니다. 사실 뒤샹 이전까지 예술은 작가의 숙련된 기술과 미적 감각이 응축된 결과물로 여겨졌습니다. ‘샘’이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예술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뒤샹은 예술가의 선택과 개념 제시에 의해 일상적인 사물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습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


‘샘’이 지닌 진정한 독창성은 변기라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기존의 예술 제도와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열었다는 데 있습니다. 뒤샹은 '이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의 정의와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곧 창작이란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기존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질문을 던지는 행위 역시 창작의 중요한 본질임을 시사합니다. 저작권의 관점에서 볼 때, 뒤샹의 작업은 아이디어와 표현의 관계, 그리고 ‘창작성’의 판단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서서 ‘선택과 배치’라는 최소한의 표현도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2. AI 생성 이미지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창의성에 대한 또 다른 질문


약 한 세기가 흐른 2022년,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이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해 만든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직접 붓을 들거나 조각칼을 사용하지 않고, 텍스트 프롬프트(명령어) 입력을 통해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가 과연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나아가 그 창작의 주체는 누구이며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지, 뜨거운 논쟁이 촉발된 것입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


이 사건은 마치 뒤샹의 ‘샘’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이 예술인가?’,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시대의 방식으로 다시 던지고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인간의 직접적인 물리적 행위 없이 탄생했지만, 그 결과물을 얻기까지 사용자는 수많은 키워드를 조합하여 입력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명령어를 수정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과정에 과연 인간의 창의적 기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어쩌면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과거의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저작권법에도 중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AI 학습 데이터에 사용된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저작권 문제,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저작권 귀속 문제, 그리고 AI를 활용한 창작 활동에서 인간 창작자의 역할과 권리 보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쟁점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 발전과 쟁점들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기술과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3. 변화의 수용, 창의성의 확장, 저작권의 미래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무섭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100년 전 오래된 질문이 지금 이 시대의 질문과 다르지 않음을 보니 창작과 저작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더욱 유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형성된 저작권 개념만으로는 현재의 디지털 기술 환경과 다변화된 창작 양상을 모두 포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핵심은 ‘인간의 창의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정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교한 붓 터치나 독창적인 멜로디 라인만이 창의성의 발현으로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명령어를 조합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결과물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창의적인 프롬프팅’ 또한 인간의 지적 활동이자 새로운 형태의 창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합니다. 이는 기존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해 왔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하고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기존 창작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창작 생태계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는 창작자와 이용자, 플랫폼 사업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AI 생성물의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며, 인간 창작자의 독창적인 기여가 있는 AI 활용 창작물에 대한 권리 보호 방안을 논의하는 등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작권 제도는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가 아니라, 창작을 장려하고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건강한 토양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변화하는 창작 환경을 반영하여 저작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창작물을 보호하고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출처 : https://www.pexels.com)


4. Outro : AI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희망하며


마르셀 뒤샹이 던졌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한 세기를 넘어,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오늘날 우리에게 창작의 의미와 인간의 역할에 대한 더욱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뒤샹의 ‘샘’이 기존의 예술적 통념에 도전하며 예술의 지평을 넓혔듯이, AI 기술 또한 창의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창작의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존중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표현으로 발전시키는 창작자의 노력과 권리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며, 동시에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사회 전체가 건강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저작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가 상생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하며, 그 결과물을 통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더 나은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제도적 정비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저작권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과 성숙한 문화 조성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창작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저작권이 창의성의 불꽃을 더욱 밝히고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풍요롭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이재상 2025


※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