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을 추모하며

10주기에 다시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by 이재상


흠모하는 스승, 품이 넓은 어른


1월 15일. 오늘은 신영복 선생님의 10주기입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늘 신영복 선생님 생각하면 '흠모'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흠모(欽慕)는 '공경하는 마음'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합쳐진 마음입니다. 저에게 신영복 선생님은 가장 기쁜 마음으로 존경하고 마음속 깊이 따르고 싶은 스승이며,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기대고 싶은 품이 넓은 어른입니다.


2015년 8월 22일,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선생님을 처음으로 직접 뵈었는데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예정에 없었으나 강의 시작 전 무턱대고 현장 담당자에게 부탁하여 사진 한 번만 찍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었습니다. 강의 전 차분히 준비하실 시간을 방해했음에도, 기꺼이 사진 촬영에 응해주시고 따뜻하게 인사해 주실 때 느껴지는 품성. 선생님과 바로 옆에 섰을 때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강연이 대외적으로는 마지막 강연이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도 이미 투병 중이셨기에 건강상 자유롭게 오래 강연하실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강연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다시 뵙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해 출간된 선생님의 마지막 책 <담론>을 읽으며 여름도 나고, 겨울도 보냈습니다.


그 이듬해인 2016년 1월 17일. 장례의 마지막 날 저녁에야 선생님의 빈소에 찾아가 인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였고, 마지막 날 저녁이었음에도 성공회대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마지막을 함께 하려 한다는 것이 뭉클했습니다. 준비된 추모 엽서에 선생님을 보내는 마음을 적어 띄우고, 촛불 하나를 밝혀두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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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성함과 저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은 2001년 입시학원에서였습니다. 그저 수능만 잘 보는 것이 목적인 학원 강의에서 '대학에 들어가거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꼭 읽어보라'는 한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이 기억나 읽기 시작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덕분에 저는 성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영상에서 선생님은 "옥중 엽서를 모아 책으로 엮은 이유는 그 세월을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며 "책 제목은 사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대신 '다시 쓰고 싶은 편지'로 짓고 싶었다"라고 밝히신 바 있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고 세월을 붙잡아 혜안을 남겨주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관계' 그리고 '만남'


"관찰보다는 애정을,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를,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선생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평생의 화두는 '관계'와 '만남'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감옥 생활이 혹독했던 것은 아마도 관계와 만남의 혹독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게 해 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하지만 선생님의 위대함은 그러한 감옥 생활에서도 관계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셨다는 점입니다. 관계가 있는 한 존재할 이유가 있기에 수감생활을 인내하셨고, 출소 이후에도 관계를 넘어 연대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려고 애쓰셨던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선생님의 저서에는 자신의 성찰과 사유를 강요하기보다는 같이 희망을 품고 같이 연대하자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선생님은 늘 '동행'할 것을, 우산을 들어주기보다는 '함께 비를 맞을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저서 <담론>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이 문구를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사표로 삼았습니다. '임직원은 교육담당자보다 훌륭하다. 그러니 교육담당자는 직원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십수 년간 이어온 저만의 원칙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름으로 관계를 맺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 서로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2017년 1주기 행사의 주제가 '만남'이었던 이유가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계와 만남'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난해 우리는 광장에서 만났습니다.



'서삼독' 그리고 '우공이산'


이 '관계와 만남'은 책을 읽을 때 '서삼독'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이어집니다. 책을 읽을 때, '텍스트를 읽고, 필자를 읽고, 최종적으로는 나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책을 읽는 행위가 결국은 나와 책과 대화하는 것, 그리고 나와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홀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가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 자신 만나고, 저자와 만나고, 세상과 만나는 아주 괜찮은 길임을, 저는 선생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출처 : 신영복 아카이브 https://shinyoungbok.net)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의 메시지는 '우공이산'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은 옮깁니다'라는 이 메시지를 저는 2가지 차원으로 읽습니다. 개인적 차원으로는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힘'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차원으로는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가 늦더라도 결국은 올바로 변화하게 되리라는 강한 기대감'으로 읽습니다. 작은 돌 하나를 옮기는 것이 빈약해 보여도 계속 끝까지 해내는 것의 의미를 '우공이산'에서 찾습니다.


(출처 : 신영복 아카이브 https://shinyoungbok.net)



여전히 살아있는 선생님의 메시지


10주기를 맞이한 올해 1월, 다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쳐봤습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2026년 새로운 다이어리에 적은 첫 한 줄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늘 변화해야 하지만 특히 올해는 더 변화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남은 절반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중 잘라내고 잊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고, 필요하다면 다시 원점에서 완전히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선생님의 메시지는 이렇게 지금도 제 옆에서 살아 꿈틀거립니다. 지금 이 시대를 선생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지, 만약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계셨다면 어떤 메시지를 주셨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라도 언제든 선생님의 메시지를 소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저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저의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旣成)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니 선생님을 찾는 목소리도 적게 들리는 것 같고, 그렇게도 흔하게 서점 매대 위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선생님의 책도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선생님의 글씨도 이제는 애써 찾아야 보이는 현실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선생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 말고도 참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저 같은 일개 장삼이사도 이렇게 선생님을 추모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돌 하나를 제 페이지에 놓아둡니다.


진심으로 흠모하는 영원한 스승. 신영복 선생님을 온 마음으로 추모합니다.


image.png (신영복 선생님 10주기 추모식, 2026. 1. 15, 성공회대 / 출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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