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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상 Sep 02. 2022

취직 말고 취업

직職 보다는 업業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유

취직 아니면 취업


하염없이 떨어져 바닥을 향해가는 자존감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선택받지 못해 '탈락 통보'를 받게 되면 마치 인생이 탈락한 것 같았습니다. '난 잘 살아왔는데,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일까?' 지난 시간들 중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왜 나를 몰라줄까’, ‘나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답답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당신이 해온 최선을 소개해보라, 증명해보라'는 숙제는 고통스럽기도 했었습니다. 뭘 얼마나 더 증명해야 한다는 건지, 얼마나 더 나를 '우수한 인재'로 말해야 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나가떨어지는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매번 다짐했었습니다. '내 자존감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자.'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에 내 자리는 반드시 있을 거야.' 라고요.



그때는 취업이든 취직이든 이 단어들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게 뭐든 어서 합격해서 이 ‘취준’ 상태를 벗어나야 했었습니다. 어서 빨리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입구를 자신 있게 통과하고 싶었으니까요. 어디든 '아침마다 가야 할 곳'이 빨리 생기기를 바랐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취업준비생 시절 저는 매일 아침 국회도서관으로 출근(?)했었습니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도서관 입구를 통과하는, 국회도서관은 매일 나를 받아주는 감사한 곳이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 '직장인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취직이 뭐고 취업은 무엇인지, 이 둘은 또 어떻게 다른 건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행히 인사팀에 입사했고 원했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해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취직 말고 취업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취직 말고 취업


첫 명함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회사의 CI가 깔끔하게 박혀있고, 소속, 직급, 이메일, 연락처가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나를 포장해주는 브랜드’ 같습니다. 명함은 ‘직職’의 상징입니다. 소속된 직장, 직장 내의 위치 (직급), 역할과 책임이 나와있습니다. ‘어떤 회사에 다니고 어떤 팀에 속한 직원입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취직에 성공한 것이지요. 좋은 회사, 좋은 일자리, 그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좋은 연봉.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것들이 중요한 것들이기는 하나 본질은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사팀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것’이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일을 기업에서 할 수 있다면 인사팀에서 육성 담당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함은 제가 선택하고 지금까지 해온 ‘업業’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직職은 직분, 직책을 의미합니다. 직장 내의 위치, 역할과 책임입니다. 취직은 ‘직장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대리가 되고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업業은 업무, 일을 의미합니다. 직장 내에서 맡은 일, 과업, 스스로 부여한 사명 등을 의미합니다. 취업은 ‘나의 사명과 같은 그 일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임직원들의 성장을 돕는 인사담당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직업’이라는 말은 ‘일業과 자리職’를 모두 포함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의 결과는 업業으로 이어집니다. 그저 취직, 좋은 회사와 연봉에만 집중하면 직職에만 머무르고 맙니다. 직職이 달라도, 명함이 사라져도 일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업業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회사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연자나 작가가 되어도  일을   있습니다. 아니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컨설턴트가 되어도   있습니다. 사회단체에서  사명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업業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갈  있습니다.


 이름 앞에 회사 이름이 사라진다면,
 이름 뒤에 ‘과장이라는 직급이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어느 날, ‘내 이름 앞에 회사 이름이 사라진다면, 내 이름 뒤에 ‘과장’이라는 직급이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건물 밖에 나가면 나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과장님’이지만 밖에 나가면 나는 어떻게 불려지게 될지 막막합니다. 결국 남는 건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지 ‘어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직職 보다는 업業이 맞지 않아서’ 입니다. 달리 말하면 ‘회사보다는 일 자체가 맞지 않아서’ 입니다. 일 자체가 보람을 주지 못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를 더 성장시켜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본질은 ‘일’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고대했던 입사의 꿈을 이루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팀으로 출근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일’과 함께하지 ‘회사’와 함께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취직은 했는데 취업하지 못했다’면, 안 그래도 팍팍한 출근길이 너무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일에서 꿈을 발견하지 못하고, 일을 통해 꿈을 이뤄나갈 수 없다면 과감하게 직職을 떠나야 한다고, 아니 그 전에 직職 보다는 업業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평생 직장은 없습니다. 평생 직업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취직 말고 취업’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이미지 출처 : pexels.com


©️이재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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