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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Jan 11. 2017

병풍이 된 기자들, 반성은 하고 있나.

미디어오늘 1083호 사설.

당신이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생각해 보자. 15분 뒤에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할 텐데 카메라도 노트북도 반입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한다. 말이 대통령이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태인 데다 특별검사가 임명돼 뇌물죄 등의 형사범죄 혐의로 대통령을 수사 중이다. 온 국민이 참담한 심정인데 계속되는 말 바꾸기에 검찰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고 탄핵 심판 변론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태블릿 PC가 공개된 이후 탄핵안이 가결되기까지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으나 한 번도 질문을 받지 않았다.

녹화 방송으로 진행했던 첫 번째는 “(최순실은)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말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는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특정 개인이 여러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안타깝다”면서 최순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세 번째 담화에서는 “국회의 방안에 따라 퇴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진 사퇴 가능성을 흘려 탄핵 표결을 늦추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세 차례 모두 질의응답 없는 일방적인 선언에 그쳤고 그나마도 사실과 다르거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세 번째 담화 때는 기자들이 “최순실씨 등과 공범 관계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박 대통령은 대답 없이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일부 기자들은 항의 차원에서 참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15분 뒤에 예정된 기자회견 참석을 거부하더라도 풀(pool)을 받아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항의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개별 언론사의 돌출 행동으로 기자회견을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언론사가 보이콧을 하지는 않을 테니 결국 대통령은 기자들을 불러 할 말을 할 것이고 여론을 흔들어 지지층을 끌어모으려는 성과를 달성할 것이다. 기자회견을 거부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자라면 당연히 참석해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답변을 끌어냈어야 한다. 제대로 된 답변을 할 때까지 놓아주지 말았어야 한다. 다만 제대로 된 기자간담회가 되려면 일방적으로 던진 15분 뒤 촬영 금지 등의 조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질의응답을 하도록 요구했어야 한다. 퇴출 직전의 대통령이 부른다고 우르르 몰려가 병풍처럼 서 있었던 기자들은 오랫동안 한국 언론 ‘흑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다. 해마다 신년 기자회견 때마다 질문지가 사전에 유출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이 반복됐다. 2014년 1월, 취임 1년만의 첫 기자회견에서는 고개를 숙인 채 ‘대본’을 읽다시피 했고 2015년 1월과 2016년 1월에는 질문 순서와 질문 내용이 ‘찌라시’로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질문 내용만 조율했을 뿐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연출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항의 차원에서 기자회견 참석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건 가장 소극적인 저항인데다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있다면 진작부터 기자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싸웠어야 했다. 출입기자단 명의로 항의 성명을 내고 공개적으로 사과 요구를 하고 질문지 유출 경로를 밝혔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간사에게 책임을 묻거나, 이번 경우에도 간사를 통해 15분 뒤 소집 같은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어야 했다. 질질 끌려갈 이유가 없다.

미르재단 의혹부터 시작해 태블릿 PC 입수와 독일의 비덱, 그리고 정유라 체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처럼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실감하고 있지만 동시에 언론이 권력 앞에 몸을 사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최태민 일가와의 의혹을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수백 벌의 옷을 ‘패션 외교’라 포장하면서도 그 옷이 어디서 오는지 묻지 않았다. ‘변기 공주’라는 별명도 탄핵 이후에야 실체를 드러냈다.

기자들이 격식 있는 기자회견을 연출하려는 청와대의 의도를 거부했다면, 그래서 어설픈 답변에 추가 질문이 이어지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면 박근혜의 실체가 좀 더 일찍 드러났을 것이다. 2014년 11월 공개됐던 정윤회 문건에 기자들이 좀 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면 한국 사회의 퇴행을 더 일찍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자들이 청와대의 권위에 주눅 들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 봐야 한다. 그건 예의도 질서도 아닌 직무유기일 뿐이다.

어느 취재 현장에서도 질문 순서를 짜고 질문 내용을 조율하는 곳은 없다. 질문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듣기만 하는 취재는 다른 취재 현장에서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대본이 없으면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대통령,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하는 청와대와 무력하게 청와대의 요구를 따르는 착한 기자들, 이 기묘한 질서가 청와대를 망치고 한국 사회를 이 지경으로 몰고 왔다. 청와대 기자실이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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