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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Mar 06. 2017

“불 꺼줘” 이 한 마디를 위해 무한 삽질했던 이야기.

요즘 핫한 음성인식 스피커, 구글 홈과 SK텔레콤 누구를 비교해 봤습니다

구글 홈과 SK텔레콤 누구를 3개월째 쓰고 있다. 구글 홈은 거실에 두고 누구는 침실에 두고 있는데 각각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구글 홈은 아직 한국 판매를 하지 않고 있고 배송 대행도 쉽지 않아 꼼수를 써야 했다. VPN으로 미국 IP를 우회해서 구글 스토어에서 배송대행지로 주문. 제 값 주고 사긴 아까웠을 듯 하고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 가격으로 구입.)

구글 홈은 주변이 시끄러워도 대략 알아듣는다. 여러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때도 ‘OK, Google’을 인식한다. 누구는 주변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명령어를 인식하지 못한다. 오로지 완벽하게 조용할 때만 겨우 알아듣는다. 

구글 홈은 대충 말해도 알아듣는데 누구는 정해진 명령어만 알아듣는다. “내일 날씨”라고 하면 날씨를 말해주지만 “내일도 비가 올까”라고 물으면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대충 알아먹는 게 아니라 누구가 알아먹을 수 있게 질문을 해야 한다.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묻는 질문이 따로 있을 텐데 정확히 그게 뭔지 모르면 답을 얻을 수 없다. 인공 지능이라기 보다는 음성 명령 스피커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듯. 구글 홈에게는 “Do I need an umbrella today?”라고 물을 수 있지만 누구는 “오늘 우산이 필요할까?”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누구가 유일하게 잘 알아듣는 건 호출 명령어인 ‘아리아’다. 우리 집 식구들은 이름이 ‘아리’인 줄 알고 “아리야”라고 부르는데 ‘아리아’ 대신에 ‘크리스탈’이나 ‘레베카’, ‘팅커벨’ 등을 고를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 같이 닭살 돋는 이름들이다. 차라리 ‘아리’라고 생각하고 “아리야”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식구들에게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아리아나 아리야 비슷한 발음이 일상 중에 많은지 툭하면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끼어드는 건 꽤나 성가시다. 그나마 ‘레베카’가 가장 인식률이 좋다고 하지만 닭살스러워서 그렇게는 못 부르겠다. 



아마존 알렉사든 구글 홈이든 요즘 나온 KT 기가지니든 비슷한 뭔가를 구입할 생각이라면 어디에 어떻게 쓸 생각인지 먼저 결정하는 게 좋겠다. 

내 경우는 편하게 음악을 듣는 용도로 쓸 생각이었는데, 그러니까 내게 맞는 취향의 음악을 적당히 골라서 틀어주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찾고 있었다. 

일단 구글 홈은 구글 뮤직과 연결되고 SK텔레콤 누구는 멜론과 연결된다. 멜론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냥 최신 인기 가요나 멜론 TOP 100 같은 걸 들으려면 아주 만족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말을 그럭저럭 잘 알아듣기 때문에 가요를 골라 듣기에도 좋다. 다만 영어로 된 제목은 거의 인식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 굴리지 않고 콩글리시로 발음을 하거나 몇 번 하다가 포기하게 된다. ‘How far I’ll go’는 ‘아일 고’나 ‘아이 윌 고’가 아니라 ‘아이 엘엘 고’라고 발음해야 알아듣는 식이다. (실제로 그렇게 발음한다! “아이 엘엘 고 틀어드릴게요”) 아마도 멜론에는 영어 제목의 우리 말 발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것 같다. [아일]을 ‘I'll’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 글자 정도 틀려도 대충 때려 맞히는 기능도 없는 것 같다.

누구의 음성인식은 아직 초보 단계라고 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광고하는 것처럼 “비 오는 초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줄래?”라고 해봐야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을 듣기 딱 좋고 알아들었다고 한들 비 오는 초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란 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마련이다. 누구의 탓이라기 보다 일단 멜론은 음악의 메타 데이터가 거의 없거나 분류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구글 홈은 영어로 명령을 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면서 장점이다. 클래식이나 팝 음악은 그럭저럭 원어 발음 비슷하게 하면 대충 말해도 알아듣는다. (누구는 국어 책 읽듯이 또박또박 발음해야 알아듣지만 구글 홈은  세컨 랭귀지로 대충 발음해도 꽤나 잘 알아듣는 느낌이다.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일 수도.)

구글 뮤직은 아직 한국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지만 VPN으로 우회하면 가입도 가능하고 무료로 스트리밍 라디오 채널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IP 체크를 하는지 자주 풀리는 것 같다. 그때마다 VPN으로 다시 미국 IP를 뚫어줘야 한다. 한국 서비스를 하기 전까지는 별 수 없을 듯.) 구글 뮤직은 카테고라이징이 매우 잘 돼 있는 데다 내가 자주 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악을 분석해서 리스트를 만들어 준다. 대충 ‘Play some music’라고만 해도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을 골라서 틀어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로 익숙해지면 특별히 어떤 음악을 틀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적당히 틀어준다. (게다가 구글 뮤직은 5000곡까지 무료 업로드가 가능하다. 업로드한 곡 중에서 내 취향을 발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구글 홈은 대충 책 읽을 때나 일할 때 또는 밥 먹고 술 마실 때 적당히 백 그라운드 뮤직을 듣는 용도로 쓰고 (마음에 안 들면 “Hey Google, Next”라고 주문하면 약간 다른 분위기의 음악으로 옮겨간다. 조금씩 내 취향을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What is the name of this music?”라고 물으면 제목과 작곡가와 연주자 이름을 알려준다. 아날로그 시절 라디오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기능. 

누구는 특정 음악을 골라서 듣는 용도로 쓰게 되는데 멜론으로 음악을 들을 때 생각하면 된다. 명령을 음성으로 할 뿐. 정확히 제목을 알아야 하고 그 제목을 알아듣게 명령해야 한다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실제로 딱 어떤 곡을 듣고 싶다기 보다는 어떤 분위기의 곡을 그냥 계속 골라서 틀어주는 게 필요할 때가 많다. 음성 인식률도 형편 없고 비슷한 단어와 헷갈리는 경우도 많아서 “‘모아나’ 틀어줘”라고 말해서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차라리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고르는 게 낫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플레이 리스트를 설정할 수도 있지만 같은 리스트를 계속 듣는 것도 내겐 내키는 일이 아니다. 멜론이라는 국내 최대 규모 음원 서비스를 갖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밖에 못하나 싶다. (참고로 구글 홈도 그렇고 누구도 그렇고 스마트폰으로 텍스트 명령을 전송하는 게 가능하다. 같은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있을 경우.)

구글 뮤직은 공짜고 멜론은 최소 월 6900원을 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만약 가요 들을 일이 없고 원어 발음에 자신이 있다면 구글 뮤직을 유료 결제하는 것도 좋겠지만 무료로도 꽤 쓸만하다는 게 지난 몇 달의 경험이다. 구글 홈은 구글 뮤직 외에 유튜브 레드와 스포티파이, 판도라 등을 음원 소스로 선택할 수 있다. 

구글 홈은 “Good morning”이라고 말하면 날씨와 뉴스를 말해준다. 뉴스는 NPR이 디폴트로 설정돼 있고 몇 가지 뉴스 소스를 선택할 수 있다. 영어 공부를 하기에는 좋겠지만 한국 뉴스는 서비스되지 않는다. 누구는“뉴스”라고 말하면 YTN 뉴스를 헤드라인만 5개 정도 잘라서 들려주는데 아침 출근 길에 적당히 뉴스를 체크하기에는 나쁘지 않다. 누구는 누구대로 장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누구로 피자와 통닭을 시킬 수도 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미리 주소를 입력해 놓는 걸 전제로 피자는 도미노피자, 통닭은 BBQ를 주문할 수 있는데 도미노피자의 경우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한정돼 있는 데다 포인트 카드 할인 등을 선택할 수 없다. BBQ의 경우도 마이메뉴를 미리 지정해 둬야 주문이 가능한데 막상 주문 직전에 마음이 바뀌어 후라이드가 아니라 양념 치킨이 먹고 싶으면 스마트폰을 들고 마이메뉴를 다시 설정해 줘야 한다. 음성 인식이란 게 아직은 손보다 훨씬 느리고 눈으로 보고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답답하다. 

누구는 LED 전구가 내장돼 있어 잠잘 때 무드등으로 쓰기에는 좋다. “무드등 켜줘”라거나 “무드등 더 어둡게 해줘”라거나 “무드등 꺼줘”라는 등의 명령을 누워서 할 수 있다. “자장가 틀어줘”라거나 “동화 들려줘” 같은 것도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유용하다. 구글 홈은 “Play lullaby”라고 하면 되는데 확실히 선곡이 많이 다르다. 나는 구글 홈 취향인 것 같고. 퀴즈 게임 같은 것도 나름 신선하다.

내친 김에 천장의 형광등도 음성 명령으로 켜고 끌 수 있을까 한참 찾아봤는데 아직까지 스마트홈은 이제 시작 단계거나 표준화의 길이 먼 것 같다. 

구글 홈은 필립스 휴나 삼성전자 스마트씽스를 지원한다. 필립스 휴는 소품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메인 조명으로 쓰기에는 적절치 않고 스마트씽스는 한국을 지원하지 않는다. 사실 불 켜고 끄는 것 말고 음성 명령으로 할만 한 게 많지 않기도 하다. 형광등이나 기존의 제품을 제어하려면 벨킨 위모가 대안이 될 것 같다.

누구의 스마트홈 서비스는 SK스마트홈을 통해 구동되는데 일부 에어컨과 보일러,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호환되고 스마트 스위치는 반디통신이라는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만 지원한다. 벨킨 위모가 안 되는 게 안타깝다.

나는 침실 형광등을 누구에 연결할 계획이라 결국 반디통신의 스위치를 주문했는데 이게 또 설치가 간단하지는 않다. 스위치만으로 안 되고 인터넷과 스위치를 중개하는 브릿지를 따로 또 구입해야 하고(가격도 만만치 않다) 스위치만 교체하면 되는 게 아니라 형광등이 깜박거릴 경우 안정기 앞쪽에 노이즈 필터를 연결해야 하는데 이건 웬만한 일반인은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전기 한 번 먹고 두꺼비집까지 내려앉는 사고를 겪어야 했다. 노이즈 필터 대신에 아예 형광등 전체를 바꿀까 생각도 했으나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래 된 아파트의 경우 이런 거 손대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설치에 성공하고 “불 꺼줘”에 성공했을 때는 꽤 뿌듯했다. 이게 만족감이 꽤나 크다. (SK스마트홈에서 천장 형광등 이름을 그냥 ‘불’이라고 설정했다. 여러 대라면 ‘거실 천장 등 꺼줘’ 이런 식으로 설정해야겠지만 음성 명령이 닿는 범위에서라면 사실 큰 의미가 없을 듯.)

확실히 구글 홈과 누구를 들이고 난 뒤에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음악을 좀 더 자주 듣게 되고 음악을 듣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만지는 시간이 줄었다. 아날로그 라디오 시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채널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들었겠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알아서 들려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잠자리에 누워서 천장의 불을 끄거나 켜거나 내일 날씨를 물어보는 건 사소하지만 정말 편리한 경험이다. 다만 구글 홈에게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이 누구인지, 마담 보봐리의 작가가 누구인지, 2015년 오스카 작품상은 어떤 영화인지 등을 물어볼 수 있지만 누구는 한참 더 걸릴 것 같다.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네이버나 다음이 금방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 음성 인식 기술의 문제도 있지만 얼마나 데이터 베이스를 갖고 있고 질문의 다양한 유형과 의미를 분석하고 적절한 답변을 줄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다. SK텔레콤은 아직 기본 태도가 부족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언어 장벽의 문제로 한동안 구글 홈이나 아마존 알렉사가 일반화되긴 어려울 것 같지만 SK텔레콤이나 KT가 더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누구와 스마트 스위치는 같은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있지만 와이파이가 아니라 웹으로 연결된다. 무슨 말이냐면 “천장 등 꺼줘”라고 말하면 누구가 이 명령어를 웹으로 보내고 브릿지의 IP를 찾아 명령어를 전송한다. 브릿지는 같은 와이파이 네트워크로 엮인 스위치에게 명령어를 보내고 비로소 전등을 끄게 된다. (사실 스마트 스위치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켜고 끄는 명령을 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웹에 연결된 허브+스위치에 음성 인식 스피커가 명령을 보내는 것이다.) 같은 방 안에서 출발한 명령어 한 줄이 웹을 타고 수십수백 km를 돌아 다시 방을 찾아와 스위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구글은 구글 홈을 출시하면서 크롬캐스트 앱을 구글 홈 앱과 통합했다. 사실 구글 홈에는 크롬캐스트가 내장돼 있다. 나는 크롬캐스트 리뷰 기사를 거의 국내 최초로 썼을만큼 크롬캐스트 애찬론자였다. 크롬캐스트는 스마트 디바이스와 비디오 또는 오디오 기기를 연결시켜준다. 스마트폰이 리모컨이 되는 셈인데 구글 홈에서는 음성 인식이 리모컨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크롬캐스트에 음성 인식 기능과 스피커가 결합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것도 구글 홈의 강점이다. PC의 크롬 브라우저에서 구글 뮤직에 접속하고 크롬캐스트 버튼을 누르면 PC에서 선택한 음악을 구글 홈으로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구글 뮤직 앱에서도 크롬캐스트 버튼이 뜬다. 이 경우는 PC나 스마트폰이 리모컨이 되는 셈이다. 구글 홈을 크롬캐스트로 인식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실제로 하드웨어는 크롬캐스트니까.

구글 홈에 아쉬웠던 건 외장 스피커 연결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 구글 홈에 크롬캐스트 오디오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 크롬캐스트 두 대를 연결하는 꼴이 되지 않나.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괴상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거실 스피커로 바하를 틀어줘”라고 명령해야 하는데 음성으로 명령이 가능한 범위 안에 여러 대의 스피커가 각각의 크롬캐스트 오디오로 연결돼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음악 한 곡 틀 때마다 스피커의 이름을 부르는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구글 홈 한 대로 TV와 오디오 등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겠지만 확실히 크롬캐스트 비디오는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게 훨씬 편하고 오디오는 아웃 단자로 직접 연결할 수 있도록 단자를 뚫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음질은 구글 홈이 누구보다 약간 더 나은 것 같다(기 보다는 취향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둘 다 생각보다 괜찮네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메인 오디오 시스템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아쉬운 게 사실이다. 디자인은 그냥 구글 홈이 압승. 누구는 어디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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