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표의 수조(2)

by 이현

칠흑같이 어둡고 길던 밤이 몇번을 지나갔다.

정표는 그동안 작은 이불 속에 웅크린채 하루를 낭비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 날이 가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하루는 미뤄둔 집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햇빛이 좋은 날에는 산책을 했다.

평범하게 여름을 기다렸다. 봄이되면 날개를 펴고 날아갈거 라는 나비처럼

여름이 되면 바다로 가 자유로워질거라는 믿음을 가진채 묵묵히.

그렇게 기다리던 여름이 왔다.

아직 바람은 쌀쌀한것 같지만 , 따뜻한 햇살이 여름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

정표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바다로 갔다.

가는길 창문 밖에 비치는 세상은 어쩜 그리 희망차보이고 따뜻한지

자기가 사는 세계와 같은 세계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 였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정표는 생각하는걸 그만두고, 신발을 벗어 물가로 걸어갔다.

가보면 알겠지.


얼음장 같은 물이 발목을 적셨다.

파도는 한순간에 덥칠것 같이 다가왔다가 부드럽게 감싸안아주곤 돌아갔다.

이 바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어쩌면 내가 널 찾아온게 아니라 너가 날 부른 걸지도 몰라 .

정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욕조에서처럼 몸을 접을 필요도 없었고,

숨을 크게 들이마실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짐을 벗어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표의 삶은 늘 묘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 박자 늦거나, 한 발쯤 비껴 서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걸 사회부적응자 라는 단어로 쉽게 단정지었지만, 정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노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같은 규칙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것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기분,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압박.

정표는 그것들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고 있었다.

버틴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살아간다기보다는, 눌리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래서 늘 피곤했고, 이유 없이 무기력해졌다.

자기만 다른 것 같다는 감각은 점점 무거워져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

소리는 멀어지고, 경계는 흐려졌다.

이곳에선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물은 정표를 밀어내지 않았고,

정표 역시 애써 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됐다.

조용했고, 그 안은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그때 정표는 알았다.

이 안정감이 낯설지 않다는 걸.

지금 느끼는 편안함이 새로 얻은 것이 아니라

되찾은 것이라는 걸.

아,

원래 내 자리는 여기였구나.

정표는 처음으로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목덜미가 간질거리듯 저려 왔다.

만져보지 않아도 느껴졌다.아가미다.

허무맹랑해보인 정표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더이상 숨이 가쁘지도, 폐가 아프지도 않았다 .

오히려 처음으로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몸은 가볍고 , 마음은 안정적이였다.

수영하는 법을 누가 알려준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알게됐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


정표는 드디어 자유로워졌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다.

더이상 아프게 하는것도 무겁게 짖누르는것도 없었다.


물고기떼를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려한 정표는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그곳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에

아주 잠깐 다시 올라가야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 곳이 자신의 본래 자리였음을 확신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수영을 하며 어느새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바다는 그런 정표를 숨겨주듯 아무일 없었다는듯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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