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
오랜만에 엄마와 큰언니를 만났다. 독립하고 나서는 세 번 정도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최대한 보지 말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했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라고, 밉고 화나는 감정도 흐려지면 문득 가족 생각이 났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로부터 밀려오는 감정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불편한 감정에 거리를 두기 위해 가족 연락처를 모두 차단해 두었다. 종종 연약한 마음이 들면 차단을 잠깐 풀어두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곧바로 전화가 온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나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다. 소름이 돋으면 팔의 털이 곤두서듯이, 무서우리만치 나의 온 감각들은 잠금 화면 위의 '엄마'라는 단어로 향한다. 무시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큰 반응이다.
불쾌한 감정들을 껴안은 채 전화를 할까 말까 스스로 물어본다. 해. 아니, 하지 마. 답변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무게를 재본다. 그날은 아무래도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언니와 집에 함께 있었다. 통상적으로 근황을 나누다가 만남의 약속이 급하게 성사되었다. 큰언니가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았다고 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언니가 물어봤다. 나는 그쯤 꼭 먹고 싶었던 피자가 있었다. 너무 비싸서 혼자 사 먹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피자.
"그래, 금요일에 집에 와."
이 가벼운 약속 또한 잘못되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나 나는 단지 치즈 냄새를 따라가는 쥐 한 마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요일 퇴근 후 가족들을 보러 가는 몸은 무거웠다. 옛 동네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지금이라도 버스에서 내려서 그냥 집에 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신 오늘을 기점으로 정확하게 가족들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그걸 말할 기회가 바로 오늘이라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무겁게 엄마 집에 도착했다. 큰언니가 미리 주문해 두어서 문 앞에 배달된 피자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별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큰언니 얼굴을 보니 곧장 웃음이 새어났다. 아차 싶었다. 그냥 피자만 먹고 가야지, 마음을 다시 굳게 다잡았다.
주문한 피자는 조금 식어서 도착했다.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맛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갈릭 디핑소스도 없었다.
티브이가 틀어져있는 거실은 소란했다.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은 티브이소리로 가려졌다. 엄마와 언니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 옆에서 피자만 우적우적 씹었다.
30분 만에 피자를 모두 먹고 나는 곧바로 집에 가려고 가방을 들었다. 아쉬워하는 큰언니의 얼굴을 보고서는 어물쩍댔다.
"별 말도 없고 TV만 보고 있으니까."
"아니, 아까는 먹느라 그랬고."
나도 이렇게 가기에는 아쉬웠다. 할 말은 하고 가야지 싶었다. 한 시간 버스를 타고 오며 생각했던 그것. 연락하지 말라는 말이 남았다.
나는 우선 가족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가족이 싫은 건 아닌데, 불편해. 연락이 오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그리고 그게 내 하루를 사는 데에 방해가 돼.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별로 연락 안 했다는 것도 아는데,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안 그래도 가족들 연락받기 싫어서 차단하기도 했어.
저번에 엄마랑 큰언니랑 식당에서 잠깐 봤을 때, 그날도 진짜 기분 안 좋았었어. 다음 날 까지도 만난 걸 후회하고 에너지를 회복하느라 하루를 낭비했고. 그다음 날에는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지 했는데, 아침부터 작은언니가 나한테 또 전화를 건 거야. 알고 보니 잘못 눌러 전화를 한 거였지만. 그때는 진짜 화나고 짜증 났어….
요즘이 나한테 되게 중요한 시기야. 딱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고, 일도 하나둘씩 하고 있어. 이제 나는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그래서 엄마랑 언니가 좀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어."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사실 배려였다. 그토록 방어벽을 세웠건만 끝없는 침투 작전에 질려 다른 전략을 세운 것이다. 엄마와 언니가 나를 '위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틈을 두는 것. 그 방법이 바로 협조라는 단어로 이뤄졌다.
엄마는 나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입장을 밝혔다. 내 말을 주의깊게 들은 사람의 대응은 아니었다. 항상 그랬듯 엄마의 욕심이자 바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의 한계였다. 내가 그토록 엄마와 연락하는 게 불편하고 싫다고 표현을 해도 엄마는 "그래도 자식이니까, 자식이니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걸 좀 넘어서보라고." 나는 또다시 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끝없는 도돌이표 식의 소통은 관계가 불편하고 질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동안 분명히 엄마에게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특히 금전적으로 홀로 서기 힘들 때 엄마는 언제나 지원해 주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것은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언의 계약 사이에는 자식 도리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있었다. 고마움과 불편함을 줄타기하는 괴로움을 나는 끊어내고 싶었다.
엄마는 언젠가 내게 말했다.
"나는 너한테 돈이구나."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매우 부끄러웠고 또한 시원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꼭꼭 감춘 속을 들킨 것 같아서였고, 시원했던 이유는 진실이 드러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가족, 특히 엄마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지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했다. 일방향 소통으로 겹겹이 쌓인 사회 교육과 은근한 사상의 주입들. 가족 사랑, 부모 사랑이라는 가면을 떼어내는 것은 대혼란과 같다. 그런 대혼란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는 결코 없다. 나도 그랬다. 누구도 자신의 편안한 세계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일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사회의 시선을 답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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