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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pr 21. 2021

제네바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다름'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이야기


봄이 온 제네바. 오늘부터 락다운 조치가 일부 완화가 되어 식당과 바들의 테라스 영업이 가능하고, 대학교의 대면수업이 가능해졌다. 레만 호수 근처의 Perle du lac에도 많은 사람들이 락다운 해제와 함께 도착한 봄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개발학 과정 1학년 대표인 Manuel이라는 친구의 생일을 기념해서 잔디밭에 간단히 모여서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마누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의 국적은 대한민국, 일본(베트남계), 베네수엘라, 러시아, 프랑스, 스위스, 터키, 영국. 제네바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큼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늘 공통적으로 다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페미니즘, 난민, 이주민, 인종차별, 문화충돌, LGBTQ, 이슬라모포비아 등등 사회에서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과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번에 가장 화두가 된 이야기는 스위스의 인종차별이야기와 최근 한국에서 아프리카 출신 망명자의 입국이 14개월만에 허용이 된 이야기였다. 제네바라는 도시는 국제기구와 NGO가 모여있는 만큼 외국인이 인구에서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이곳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서 사용하는 돈은 제네바라는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이 도시에서 열리는 수많은 컨프런스를 참여하기 위해 오고가는 국제기구 종사자, 학자 그리고 학생들 그리고 그들의 여러 활동으로 활기를 찾는 도시이지만,  의외로 스위스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정이  강한 곳이고 제네바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대놓고 티를 대지는 않지만, 이번에 부르카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할만큼 보수적이고 배탁적인 곳이다. 나도 이 곳에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다른 유럽이나 미국 도시들과 비교하면 아주 준수한 편이지만,  그래도 제네바라는 곳에서 인종차별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조금 놀랐다. 러시아인 친구와 프랑스인 친구도 본인들이 이 곳에서 지내면서 느낀 스위스인들의 배타성으로 인해 모욕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니 분위기를 알만하다. 스위스의 배타성과 차별은 사실 인종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개발학을 공부하고 인권과 평등, 자유를 중시하는 학생들이다 보니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예민한 편이다.


이번에는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이제 아시아에서 일본과 함께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오픈되어 있는 나라로 인식이 된다.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지금은 높은 인지도가 있고,  특히나 코로나에 대한 대처로 인해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곳이다. 내가 인스타그램에도 포스팅하면서 극대노를 표출했던 한국의 후진적인 난민이나 망명자에 대한 조치와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친구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인정받는 것이 이렇게 힘들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한국이 이렇게 폐쇄적이라는 것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명확하게 폐쇄적인 국가이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 국민에게는 한없이 열려 있지만, 난민, 망명인,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하고 혹독한 곳이다. 유럽에서 범죄를 저지른 몇몇 난민들을 일반화하며 모든 난민들을 안보화하고 범죄자로 인식하고 반대를 한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난민과 망명자,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며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도중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A - "만약 세상에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우리가 멍청해졌겠어. 이렇게  우리처럼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즐겁고 이러한 '다름'을 공부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즐거워"

B - "맞아 그래서 나는 내가 제네바에 있다는 사실도 행복하고 이곳에서 너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 그리고 K 전에 수업에서 너가 경찰의 입장에서 국경관리에 대해 했던 이야기 너무 인상적이었어. 나는 경찰이 이러한 점을 고민한다는 걸 상상도 안 해보았고 경찰이 국경에서 난민에게 하는 행동들을 되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너를 통해서 경찰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경찰인 너가 이 논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너무 좋았어. 모든 경찰들이 너처럼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인도주의에 대해 고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다른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쿨한 일이야"


다름을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름을 인정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배운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오늘도 또 배우게 되었다. 이 곳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얼마나 큰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지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이 다양한 공부를 하다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왔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친구들을 보며 나는 늘 배운다. 어떤 친구는 똑같은 책을 읽어도 던지는 질문의 깊이가 다르고 어떤 친구는 국제기구나 NGO에서  인턴으로 여러 번 근무를 하면서실무적인 어려움과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에 비해 나는 사실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특이하긴 했지만, 나는 영어도 잘 못하고, 국제경험도 현저히 없으며,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으니 사실 할 말이 많지가 않았다. 수업에서 토론을 진행하거나 발표과제를 진행할 때 항상 자신감이 없었고 부담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매번 배우기만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작년 한 수업에서는 더듬더듬 한 마디 하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족한 나를 통해 누군가가 무엇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나를 통해 누군가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가 경찰로 계속 일을 했더라면 다름이라는 주제로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는 분명 한국의 상황에 맞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직원분들, 동기들,  선배들을 만날 때마다 다른 인사이동지, 결혼, 부동산, 주식투자 등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긴 하지만 정보 그 이상의 이야기가 오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중요한 건 알겠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세상에 더 많고 다양하고 존중받을 이야기가 많은데 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우리네의 물질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데에만 한정된다는 느낌이었다. 또한 공직사회는 다른 것보다는 획일화되고 같은 것들을 선호한다. 어떤 의미에서 다소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나는 그런 획일화하고 공통된 사회에서 다양성보다는 독특함으로 해석이 되었던 것 같다. 나와 일했던 직원분들은 '너가 이상한 건 아닌데 이 조직에서는 참 독특한 캐릭터야. 재밌고 신선해.' 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물론 너 진짜 별로야를 돌려 말한 걸수도 있겠다.) 획일화와 공통성을 좋아하는 곳에서 잠시 벗어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름을 배우는 곳에 있다. 아무리 코로나가 문제라고는 하지만 이런 멋진 것을 배울 수 있고 이런 멋진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네바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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