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자의 3인칭 에세이

학원 강사 편

by 이지속

취업을 위한 스펙 하나 만들지 못하고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24살의 지속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딱히 선택지가 없었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된장찌개를 눈치를 보며 한 술 뜨는데 부모님의 이글거리는 눈빛 때문이었나 뜨거운 찌개에 입천장을 데고 말았다. 눈칫밥은 살로 가지 않는다는 옛 선조의 말은 사실이었다. 노동하지 않는 자, 먹을 자격 없다는 표어가 머릿속을 유영하던 어느 날 아빠는 그런 지속이 안타까웠는지 벼룩시장 신문을 말없이 쥐어주었다. 펼쳐 구인란에는 숙식제공 커피숍도 있었고 제조업 공장도 있었지만 지방 소도시인지라 일자리다운 일자리는 찾기가 힘들었다. 지속은 고심 끝에 한 영어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자 원장이 운영하는 원생이 350명 정도 되는 제법 큰 학원이었다. 월급은 오후 2시 출근해서 9시 퇴근에 140만 원, 석식비 포함이었다. 강사 경력이 전무한 신참 내기 지속은 조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설픈 시연 강의 후 출근해도 좋다는 말에 그저 신이 났을 뿐.

첫 출근 후 해맑은 지속에게 한 선임 강사가 원장 몰래 자신의 강의실을 청소하라는 얘기를 했을 때 지속은 잘못된 첫 단추를 꿰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영어 이름 에나 그녀는 자신의 교실을 마지막으로 쓰는 지속이 청소를 하는 것이 맞다고 우겼다. 다섯 클래스 중 에나는 네 개의 수업을 맡아서 했다. 지속은 에나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두툼한 두 턱을 싸리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쓰레받기로 뚝배기를 갈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딸이 첫 출근을 한다며 지속보다 더 들뜬 표정으로 출근한 아빠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지속은 에나의 교실을 깨끗이 쓸고 닦았다. 신참 강사라 전용 교실을 배정받지 못하고 선임강사들의 공강에 교실을 빌려 쓰는 바람에 지속은 자신은 핸드백을 둘 공간조차 없었지만 집 밖을 나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그저 신나고 즐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자 원장의 평이 후해졌다. 작지만 깔끔한 교실을 배정해주고 지속의 책상도 새로 놓아주었다. 지속은 자신의 교실이 생긴 것이 기뻤다. 핸드백을 놓아둘 책상이 생긴 것도 감사했다. 투명하고 맑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참으로 보람됐다. 장르로 따지면 뭐랄까 꿈결처럼 행복했기에 판타지에 가까웠다.

상냥했던 노처녀 원장이 가면을 벗고 히스테리를 부리기 전까진!

매주 화요일 수업 전 강사 회의를 가졌다. 말이 회의지, 원장에게 혼구녕이 나는 시간이었다. 원장은 강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두고 봤다가 수첩에 적은 뒤 강사 회의 때 누구인지 주어는 생략한 채 언급했다. 이를테면 딱풀을 쓰고 뚜껑을 안 닫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주의해주세요. A4를 이면지로 안 쓰고 헤프게 쓰는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책상 위에서 커터칼을 쓰는 선생님은 본인 집 식탁 위에서도 칼질을 하실까요? 등등.

첫 강사 회의 때 굳이 저런 걸 수첩에 적는 게 오히려 자원낭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원장이 주어를 생략했지만 강사들은 이미 누굴 얘기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해당 강사라면 으레 얼굴과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같은 직책의 평 강사들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했다. 원장의 수첩에 적히지 않는 강사는 학원에서 완벽한 존재로 나이, 종교, 학벌을 떠나 아무도 쉽게 보지 못했다. 지속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저거야. 여기서 살아남는 법을 알았어. 수첩에 절대 적히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그 다짐처럼 지속은 원장의 수첩에 지적사항을 적히는 일이 없었다. 손이 빠르고 야무지다는 칭찬만 들었을 뿐.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지속의 마음은 뭔가 불편했다. 회의 때마다 원장의 지적에 얼굴이 붉어지는 동료 강사 때문이었나, 영어 전공자가 아니면 학원 강사를 하는 것이 불법이라며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강사에게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오면 화장실에 숨으라 말하며 낄낄대는 원장의 앞니에 묻은 붉은 립스틱 똥 때문이었나. 완벽한 판타지 속을 뛰어놀던 지속은 아름답기만 했던 알록달록한 배경이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서슬 퍼런 분노가 서려지는 것을 느꼈다.

지속은 원장의 수첩을 빼앗아 그녀의 머리를 후려친 뒤 벅벅 찢어 발리고 싶었다. 너나 똑바로 하라고 쫄쫄 굶고 일하는 강사들에게 떨이 빵이나 사주면서 생색내지 말고 제대로 된 식사시간을 보장하라고 퇴직금도 안 주고 사대보험도 안 들어주는 너는 나랏돈과 내 돈을 훔친 도둑년이라고 너 같은 게 무슨 학원 원장을 하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분노 조절자 지속은 그 말들을 삼키며 지방 소도시 노처녀 히스테리어 원장 밑에서 꽉 채운 6년을 강사로 보냈다. 여기서 포인트는 단 돈 만원의 월급 인상도 없이.

자, 여기까지 보면 지속은 분노 조절자가 아닌 모지리 팔푼이 같아 보일지 모른다. 그 6년의 시간 동안 지속은 더 이상 학원일이 신나지도 감사하지도 보람되지도 않았다. 입사한 지 6개월이 흐르자 학원이 돌아가는 틀과 주변 강사의 성격이 보였고 학부모들의 비위를 맞추는 기술도 습득했다. 눈감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손에 익었으며 수년에 걸쳐 수 십 명의 동료강사들이 관두고 새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소도시에서 학원 바닥은 다 거기서 거기란 결론에 도달했다. 대도시에 나가 다달이 월세를 내고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 할바에 영혼 없이 대충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이곳이 더 낫다고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선 지속은 그렇게 자위하며 자신의 인생을 좀 먹고 있었다.

아, 이런 지속도 작은 꿈 하나가 가슴속에 아무도 모르게 때로는 스스로도 잊을 정도로 옅고 미약하게 움트고 있었다.

지속은 짜증이 나고 답답할 때면 글을 썼다. 비문과 비약으로 가득한 문학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하고 더러운 글을, 여차 하면 소설 속 주인공 앞뒤 없이 사람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버리고 난잡하게 이성을 만났으며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속은 자신의 소설에 만족하며 눈물을 훔쳤기에 자신처럼 불행한 이들에게 소설로 감동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막연하고도 아득하게 문예창작학과로 유명한 대학의 대학원생이 되어 이 지긋지긋한 학원의 족쇄를 벗어버리겠다고. 그렇기에 학비를 위해 치밀어 오르다 못해 끓어 넘치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