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화장실 거울 속에서 원장과 닮은 자신을 목격한 지속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가만 보니 지난 4년 동안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서인지 지속은 원장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무표정일 때 유독 차가워 보이는 인상도 그랬고 다른 이의 실수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그랬다. 술과 남자를 좋아하는 크리스천, 결코 조화롭지 않은 단어로 설명되는 오십 줄의 노처녀 원장. 지속은 종종 자신이 그녀처럼 늙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상을 지배당하곤 했다.
그래서 대학원 원서를 썼다. 지속은 추가의 추가의 추가로 합격을 맛보았다. 그녀 평생 처음으로 갈망하던 것을 손에 쥐어 본 순간이었다. 마치 당장이고 베스트셀러 작가 된 듯 의기양양했으며 작품으로 인정받는 자신을 그려보았다. 이런 천재적인 작가가 우리 학교에! 장학금을 드립죠. 얼굴도 모르는 대학총장의 모습까지 상상하며 입학 전까지 깔깔 가스를 마신 듯 멈추지 않는 웃음으로 행복했다. 지속은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생각했다. 그때 더 웃었어야 했다고. 왜냐하면 그녀에게 더 이상 웃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첫 학기의 첫 수업 후 지속은 소설 전공을 원했기에 논문 지도 교수를 결정해야 했다. 석박사 통합 과정이라 한 박사 언니가 그럼 빨리 소설 전공 교수님에게 연락을 드려 지도를 부탁드려야 한다고 인기가 많은 분이라 늦게 연락을 하면 안 된다고 팁을 알려주었다. 지속은 언니가 알려준 교수님 연락처로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입학한 이지속입니다. 교수님께 논문지도를 부탁드리려고요."
한참 뜸을 들인 교수는 싫다고 했다. 지속은 당황해서 어버버 말을 잇지 못했다. 교수는 이미 지도학생이 많다며 다른 교수님을 알아보고 그래도 자리가 없으면 다시 연락을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였음에도 지속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민망함에 갈 곳 잃은 시선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후에 친한 동기로부터 지속을 거부한 교수가 논문지도를 해주고 싶다는 연락을 먼저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지속은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 맞은 듯 정신이 아득했다. 내 글이 형편없어서 지도하기 싫은 것인가. 그렇다면 굳이 날 왜 이곳의 학생으로 뽑은 것인가. 속상함에 박사 언니에게 한탄을 하니 놀라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고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화를 내며 다른 교수님에게 연락해 볼 것을 권했다. 그래서 지속은 소설 전공을 꿈꿨지만 소설 전공 교수의 논문 지도가 아닌 평론 전문 교수님의 논문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그녀가 꿈꾸고 그려온 대학원 생활의 모든 상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타대학, 타과생은 그곳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글쓰기의 기본기도 대인관계의 넉살도 없던 지속은 주류와 어울리지도 못했다. 문창과 성골이 아니었기에 조별과제를 할 때도 깍두기 취급을 받았다. 텃새, 지속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할 완전한 단어를 찾아내곤 이마를 탁 쳤다.
자신이 4년 동안 학원에서 근무하며 스쳐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뜨내기 강사를 바라보던 무시 어린 눈빛과 태도로 지속을 대하는 모습을 그들에게서 똑같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조장을 맡은 성골 출신 원생은 같은 성골들과만 의견을 나누고 조율했다. 지속이 뭔가 의견을 내거나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아 긴 설명은 됐고요. 그건 거기까지 하고 그냥 시킨 것만 하세요." 하며 말을 끊기 일쑤였다. 무안함에 입을 닫은 지속은 조장의 몹시 상대하기 귀찮아 심드렁한 말투를 듣고 앉아 있자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선 책상을 뒤엎고 성골 조장의 머리끄덩이를 쥐어 잡고 털기 춤을 추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속은 턱을 쳐들고 무리 지어 다니는 성골들이 쓴 글이 궁금했다. 대학 4년에 대학원까지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문학만 공부했으니 글솜씨가 경탄할 정도로 경이롭지 않을까. 그들의 글을 읽고 감동한다면 자신에게 저지른 무례와 핍박을 감내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소설을 훌륭하고 완벽하게 잘 써야만 했다. 후에 성골들이 쓴 소설을 읽은 지속은 생각했다. 감탄할 재능을 가진 사람은 학부 때 이미 등단하여 대학원에 절! 대! 오지 않는다고.
지방 고향 집에서 서울로 대학원을 다니며 지속은 살도 마르고 문학에 대한 열정도 바싹 말라갔다. 대학원 공부는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딴판이었다. 학부의 기본 지식 없이 강의를 듣고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다. 교수들은 강단에서 신나게 떠드는데 머릿속에 들어오거나 마음을 탁 치거나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그래서 여길 왔어하는 깨달음이 없었다. 한 학기에 6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두 번이나 내고 그만둘까 고민할 때쯤 지속은 정지아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됐다. 평소 그분의 소설을 좋아했기에 최애를 마주한 성덕의 심정으로 지속은 수업을 임했다. 그분은 대학원에서 만난 정치질에 심취한 다른 교수들과는 달랐다. 어떤 점이 달랐느냐,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재능도 없이 노처녀 원장에게 시달리며 번 돈을 몽땅 대학원에 투자한 지속의 어리석음을 적어도 열정으로 포장해주는 따뜻한 시선 말이다. 쉬는 시간이면 담배를 태우는 모습도 안경을 한 번씩 올리며 합평 발표 소설을 읽는 모습도 지속의 눈에 교수님의 모든 행동이 멋짐이었다. 나이 든 여자는 다 원장처럼 추할 줄 알았는데 멋졌다. 그저 멋졌다. 그래서 지속은 진지하게 담배를 배워볼까 고민했다. 저 손가락 각도를 자신이 낼 수 있나 볼펜을 쥐고 연습해봤지만 영 아니었다. 그분의 아우라는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노로 가득한 지속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분은 성골과 뜨내기를 똑같이 대했다. 그건 마더 테라사도 간디도 힘든 것이기에 경외심마저 생겼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면 다른 교수들은 대학원생이 사주는 밥을 얻어먹고 입을 싹 닦았다. 회비를 5만 원씩이나 내고도 술 한잔 못 마시는 지속은 그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회식 때 온갖 고급 요리에 비싼 고량주만 벌컥벌컥 마시고 조교가 챙겨주는 여명 808까지 야무지게 챙겨 마시는 교수의 주둥이를 꼬집어 비틀고 싶었다. 지속은 왜 자신의 주변은 어딜 가나 하나같이 얄팍하고 간사하며 이기적인 인간들만 드글대는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연봉 5천만 원 이하에겐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는 정지아 교수님의 신념이 멋졌다. 지속은 대학원을 관두고 싶을 때마다 연봉 5000만 원이 넘어 교수님께 고급 오마카세에서 사케와 식사대접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비록 논문지도 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관두고 또다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졸업 시험을 모두 패스하고도 논문을 쓰지 못해 석사 학위를 받지 못한 미완의 수료로 공부를 마무리했지만 (대변 후 밑을 닦지 못한 찜찜함을 영원히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 덤) 지속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힘든 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